프리미엄 증류주 수요가 급격히 둔화되면서 글로벌 주류업계가 전례 없는 재고 부담에 직면했다. 코로나19 이후 수요 확대를 예상해 늘린 숙성주 생산이 소비 둔화와 맞물리며 재고가 역사적 고점을 기록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디아지오, 페르노리카, 캄파리, 브라운포맨, 레미코앵트로 등 주요 주류사들이 보유한 숙성 재고 규모는 약 220억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 10년 중 최대치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프랑스 코냑 업체 레미코앵트로는 숙성 재고만 약 18억유로에 달해 연간 매출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까지 불어났다. 디아지오 역시 매출 대비 재고 비중이 2022년 34%에서 2025년 43%로 크게 상승했다.
재고 급증의 배경에는 팬데믹 기간 소비 급증을 전제로 한 과잉 생산이 있다. 이후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으로 소비 여력이 약화된 데다, 웰빙 트렌드 확산과 체중 감량 약물 보급 등 구조적 변화가 프리미엄 주류 소비를 위축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잉 재고 부담이 커지자 업체들은 생산 감축과 설비 조정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산토리는 미국 켄터키의 짐빔 버번 증류소 가동을 최소 1년간 중단했고, 디아지오는 텍사스와 테네시 일부 생산시설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일부 브랜드의 가격 인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감산이 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된다. 위스키와 코냑 등 장기 숙성주 특성상 생산과 판매 사이에 수년의 시차가 존재해, 수요가 회복될 경우 적정 재고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재고 조정이 향후 시장 반등 국면에서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