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바현 나라시노 지역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수용과 학살의 역사를 되짚는 시민 필드워크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야치요 공원 일대와 옛 나라시노하라(習志野原) 군사시설 부지를 찾아 현장 답사를 진행했으며, 이날 안내는 일본의 역사연구자 고조노 박사가 맡았다.
현장에는 옛 일본군 기병부대 주둔지를 설명하는 안내판과 기념비들이 남아 있었지만, 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들이 수용됐던 나라시노 수용소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자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공원 내에 세워진 ‘군마충혼탑(軍馬忠魂塔)’이 눈길을 끌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 비석은 1954년 옛 기병 제13연대 전우회가 건립했으며, 1974년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
반면 2021년 나라시노시 교육위원회가 설치한 안내판에는 1923년 조선인들이 어떤 이유로 연행돼 나라시노 수용소에 수감됐는지, 어떤 혐의로 조사를 받았는지, 계엄령 발동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포함되지 않았다.
간토대지진 직후 일본 정부와 군경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확산시켰고, 이를 근거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후 군경과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이 대규모로 벌어졌다.
시민단체와 연구자들은 나라시노 수용소 역시 당시 검거된 조선인들을 집단 수용했던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고 지적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수용된 조선인들이 인근 지역으로 이송된 뒤 자경단에 넘겨져 희생됐다는 증언과 기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수용자 명단과 신원, 조사 과정, 이후 행정 처리와 관련한 자료는 충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간토학살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 이후 2일부터 수일간 이어진 조선인 집단학살 사건이다. 희생 규모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오랫동안 관련 책임과 국가 개입 여부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으며, 진상 규명 요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당시 일본 정부가 작성한 공문서 원본이 공개되면서 군과 행정기관이 조선인 관련 유언비어와 학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새롭게 확인되기도 했다.
답사 참가자들은 “군마의 영혼을 기리는 기념물은 남아 있지만 정작 수용된 조선인들의 이름과 행적은 여전히 기록 속에 가려져 있다”며 “나라시노 수용소 관련 자료와 행정기록을 공개해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