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라멘과 한국의 라면이 세계 식품시장에서 빠르게 확산하면서 영어권에서 두 음식을 구분하는 표기 방식도 점차 정착되고 있다. 일본식 면 요리는 ‘Ramen’,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은 ‘Ramyeon’으로 구분하는 흐름이다.
과거 해외 소비자들에게 한국 라면도 대부분 ‘Korean ramen’이나 ‘instant ramen’으로 소개됐다. 이미 영어권에서 ‘ramen’이라는 단어가 일본식 면 요리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음식명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농림수산성의 영문 자료에서도 일본 각 지역의 라멘을 일관되게 ‘ramen’으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의 라멘은 면과 국물을 기본으로 돈코츠·쇼유·미소·시오 등 지역과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면서 하나의 외식 문화로 세계에 알려졌다.
반면 한국의 라면은 세계화 과정에서 ‘ramyeon’이라는 독자적인 이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이다. OED는 2025년 12월 업데이트에서 한국어에서 유래한 ‘ramyeon’을 새로운 영어 단어로 등재했다. OED는 이를 한국에서 먹는 인스턴트 형태의 면 음식으로 설명하면서 일본의 ramen과 구별했다.
즉 영어권에서도 이제 ‘ramen=일본 라멘’, ‘ramyeon=한국 라면’이라는 언어적 구분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표기 차이는 발음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어 ‘ラーメン’은 영어로 옮기면 자연스럽게 ‘ramen’이 된다. 반면 한국어 ‘라면’은 ‘면’의 발음을 반영하면서 ‘ramyeon’이라는 표기가 사용된다.
국립국어원은 라면의 영문 표기를 하나의 공식 형태로 별도 확정해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실제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서도 ramen, ramyeon, ramyun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공식 영어 표기로 규정하는 문제는 어문 규범의 답변 범위를 벗어난다고 설명했다.
한국 업체들의 상품에서는 ‘ramyun’이라는 표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제품명이 해외에서 오랫동안 ramyun 표기를 사용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세계 시장에서는 크게 세 가지 표현이 공존한다.
‘Ramen’은 일본식 라멘을 의미하는 국제적인 음식명에 가깝고, ‘Ramyeon’은 한국식 라면을 구별해 표현하는 문화적 명칭으로 확대되고 있다. ‘Ramyun’은 한국 식품기업의 제품명과 브랜드 표기에서 널리 사용되는 형태다.
그러나 최근 흐름에서 주목할 부분은 ‘ramyeon’이 단순한 로마자 표기를 넘어 하나의 음식 장르를 나타내는 단어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라면의 세계 시장 확대가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한국의 라면 수출액은 2025년 약 15억2100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약 21.9% 증가한 규모다. 2016년 약 2억9000만 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5배 이상으로 커졌다.
2025년 최대 수출시장은 중국으로 약 3억8500만 달러를 기록했고 미국이 약 2억5500만 달러로 뒤를 이었다. 한국 라면이 특정 아시아 시장을 넘어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시장의 일상적인 식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K팝과 한국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한국의 식문화가 알려진 것도 ‘ramyeon’이라는 표현이 확산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해외 소비자가 한국 라면을 일본 ramen의 한 종류가 아니라 매운맛과 볶음면, 즉석조리 방식 등을 특징으로 하는 별개의 K푸드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음식의 맛만 수출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의 이름까지 수출한다.
과거 김치가 ‘Korean pickles’가 아니라 ‘kimchi’로, 비빔밥이 ‘mixed rice’보다 ‘bibimbap’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한국 음식의 정체성이 강화됐던 것처럼 라면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
앞으로 해외 표기에서는 ‘Korean ramen’보다 ‘Korean ramyeon’ 또는 단독으로 ‘ramyeon’을 사용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ramen’이라는 단어를 세계적인 음식명으로 만든 데 이어 한국도 ‘ramyeon’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세계 식문화 사전에 올리고 있는 셈이다.
라멘과 라면. 한글에서는 한 글자 차이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이제 서로 다른 국가의 식문화와 산업을 나타내는 두 개의 이름으로 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