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요코하마 중심으로 전문점 확산…무제한 뷔페와 합리적 가격 앞세워 소비층 확대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오리고기, 일본 소비자 입맛 사로잡아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요리 베이징덕(北京ダック·페킹덕)이 일본 외식시장에서 새로운 소비층을 확보하고 있다. 과거 고급 중화요리 전문점에서 특별한 날 즐기던 음식이었지만 최근에는 무제한 뷔페와 전문점, 관광지 중심의 간편 메뉴로 판매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도쿄와 요코하마 등 수도권에서는 베이징덕을 대표 메뉴로 내세운 음식점들이 고급 중화요리부터 가족 외식, 직장인 회식까지 다양한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
베이징덕은 오리를 통째로 구워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살코기를 밀전병에 싸 먹는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요리다. 얇게 썬 오리고기에 파와 오이, 달콤한 춘장 계열의 소스를 곁들여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베이징덕은 중국 황실요리의 전통을 계승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외식 메뉴이자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 베이징덕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고급 중화요리에 대한 선호와 외식업계의 가격 경쟁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도쿄 긴자 등 고급 상권에서는 중국의 유명 베이징덕 브랜드인 전취덕(全聚徳)이 전통적인 조리법과 고급 서비스를 앞세워 시장을 개척해 왔다. 중국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는 일본에서도 베이징덕을 고급 중화요리의 상징으로 알리는 데 역할을 했다.
반면 최근에는 가격 부담을 낮춘 전문점들이 등장하면서 소비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도쿄 오다이바의 상업시설 덱스 도쿄비치에는 2025년 4월 베이징덕 전문점 ‘가엔(嘉園)’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전용 화덕에서 구운 베이징덕과 다양한 중화요리를 주문식 무제한 코스로 제공한다.
전통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조리 과정이 복잡해 특별한 자리에서 먹던 베이징덕을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즐기는 외식 메뉴로 내세운 것이다.
도쿄 우에노의 베이징덕 전문점 역시 수십 종류의 중화요리를 제공하는 무제한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가격대에 따라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해 고급요리와 대중적인 외식의 경계를 낮추고 있다.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도 베이징덕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일본 최대 규모의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진 요코하마에는 전통 중화요리 전문점과 베이징덕을 판매하는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다.
일본 음식점 정보업체 라쿠텐 구루나비는 지난 9월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베이징덕을 즐길 수 있는 음식점 15곳을 소개했다. 여기에는 고급 코스요리 전문점뿐 아니라 주문식 무제한 식당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베이징덕을 제공하는 음식점도 포함됐다.
이 같은 판매 방식의 다양화는 베이징덕이 일본에서 고급요리라는 기존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관광과 가족 외식 시장으로 소비 영역을 넓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소비자들에게 베이징덕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독특한 식감이다.
고온의 화덕에서 구워낸 오리 껍질의 바삭함과 촉촉한 살코기, 밀전병의 부드러운 식감이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달콤하고 짭짤한 소스와 채소를 곁들이면 기름진 맛을 조절할 수 있다.
일본 식문화에서 바삭한 튀김이나 구이의 식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점도 베이징덕의 매력을 설명하는 요소로 꼽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맛의 선호가 실제 소비 증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시장조사 자료는 제한적이다.
베이징덕의 또 다른 경쟁력은 음식 자체가 제공하는 시각적 경험이다.
윤기가 흐르는 오리를 손님 앞에서 잘라내거나 직접 밀전병에 싸 먹는 과정은 일반적인 중화요리와 차별화된다. 이러한 특징은 가족 모임이나 회식, 관광객 대상 음식점에서 활용하기 좋은 요소다.
실제 요코하마의 베이징덕 전문점 ‘왕초(王朝)’는 화덕에서 구운 오리를 손질해 제공하는 방식과 음식의 시각적 연출 등을 일본 방송을 통해 소개하기도 했다.
베이징덕의 일본 진출은 새로운 현상만은 아니다.
요코하마의 전통 중화요리점들은 오래전부터 베이징덕을 제공해 왔고, 중국 유명 브랜드 역시 일본 시장에 진출해 고급 중화요리 시장에서 고객을 확보했다.
달라진 점은 판매 방식과 가격대다.
과거에는 한 마리 단위의 고가 주문이나 연회용 코스요리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소량 주문과 무제한 코스 등을 통해 소비자가 접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났다.
특히 일본 외식시장에서는 가격 대비 만족도를 뜻하는 ‘코스트 퍼포먼스(コスパ)’가 중요한 소비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 베이징덕 전문점들은 이러한 소비 성향에 맞춰 다른 중화요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코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다만 일본 전체에서 베이징덕 소비량이나 전문점 매출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보여주는 공인 통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국적인 인기 급증으로 단정하기보다는 도쿄와 요코하마 등 주요 외식 상권을 중심으로 전문점과 판매 형태가 다양해지는 현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일본에서 베이징덕의 변화는 외국 전통요리가 현지 외식시장에 적응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 황실요리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가격과 제공 방식을 바꿔 일반 소비자들과 접점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고급 식재료와 전통 조리법을 강조하는 전문점에서 다양한 중화요리를 함께 제공하는 대중식당까지 베이징덕의 판매 방식은 한층 다양해졌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요리 베이징덕이 일본에서 고급 외식과 대중 외식을 연결하는 메뉴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