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란 싸우지 않는 것’을 보여준 미일 정상회담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가장 강한 동맹국으로 정리된다.

정확히 80년 전인 1945년에 두 나라가 목숨을 걸고 4년간 싸웠던 태평양 전쟁이 종결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소 어이없을지도 모른다.

전쟁 직후 일본의 안보는 미국을 중심으로 짜였다. 당시 미군정 하에서 총리를 지냈던 요시다 시게루는 안보를 미국에 맡기고 일본은 경제 재생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요시다 독트린’으로 불린 이 전략은 지금도 일본 외교 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이 정리한 ‘외교기본방침’ 제1장에도 미국의 핵우산을 활용해 일본의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정상회담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의 안전을 확약받아 국민을 지키는 생존의 문제다.

전후 80년간 일본 외교의 핵심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로 정리된다. 미국 대통령이 상식적인 사람이면 큰 문제가 없었지만, 도널드 트럼프처럼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일본은 이미 트럼프 1기 때 이를 경험했다. 일본은 2016년 대선이 진행 중일 때 은근히 힐러리 클린턴 편에 섰다가 트럼프 당선 뒤 호된 앙갚음을 당할 뻔했다. “일본이 미국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그 증거였다.

다급해진 일본은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 당선인 신분이던 트럼프를 미국 뉴욕에서 만났고, 이듬해 2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에서는 투자와 고용이라는 큰 선물을 안겼다.

경제적으로 일본에 큰 손해였지만, 당시 회담을 이끌었던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웃는 얼굴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예민한 문제였던 환율, 무역 불균형, 방위비 분담 등의 논의는 트럼프 입에서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첫 정상회담, 이시바의 외교 전략

트럼프 재선 뒤 첫 미일 정상회담을 맡게 된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트럼프의 발언은 더욱 위협적으로 변했고, 여기에 속도를 내려고 했다. 동맹이나 우방은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오락가락하는 트럼프와 자기 말하기 좋아하는 이시바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베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시바는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세 가지 전략으로 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는 무장을 해제하고 트럼프의 품에 훌쩍 뛰어든 것이다. 그는 트럼프의 코드에 맞춰 끝없는 칭찬을 이어갔다. 이는 본인이 직접 비판했던 아베 전 총리의 기존 방식을 따른 것이다.

두 번째는 철저한 준비다.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가 당선된 지난해 11월부터 별도의 팀을 꾸려 정상회담 준비에 나섰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에 트럼프가 가장 좋아할 만한 답변을 준비했다. 아베 전 총리 시절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작은 총리’로 불렸던 외무성 간부에게 통역을 다시 맡긴 것도 이 전략의 일부였다.

마지막은 일본만의 ‘오모테나시(일본 특유의 손님을 환대하는 대접 문화)’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투자 금액을 발표해 그를 기쁘게 했다. 선물로는 금장 사무라이 투구를 준비했다. 이는 트럼프의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그의 손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기획된 선물이었다.

외교란 싸우지 않는 것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두고 한국에서는 ‘아부외교’로 폄하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국민을 지키기 위해 안보와 경제를 맞바꾼 것을 단순히 아부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외교란 싸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교천재의 이야기를 수장이 사라진 한국 외교 라인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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