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조업을 상징해온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정신이 자동차 산업에서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수작업과 장인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일본의 소규모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전환과 글로벌 공급망 변화 속에서 생존 기로에 놓였다.
일본 자동차 산업은 오랜 기간 대기업 중심 구조를 유지해왔지만, 그 이면에는 독자 기술과 장인 생산 방식을 고수해온 중소 제조사들이 존재해왔다. 스포츠카, 특장차, 클래식카 복원, 초소형 전기차 등 틈새 시장을 담당하며 일본 자동차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해온 업체들이다.
대표 사례로는 일본 경량 스포츠카 브랜드인 미쓰오카 자동차가 꼽힌다. 1968년 설립된 이 회사는 대량생산 대신 수작업 조립과 복고풍 디자인을 강점으로 성장했다. 일부 모델은 장인이 직접 차체 마감과 내장 작업을 담당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동화와 안전 규제 강화로 개발 비용 부담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특히 일본 소규모 제조사들은 내연기관 시대의 숙련 기술에 강점을 가져왔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배터리·소프트웨어·반도체 기술 경쟁력이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 엔진 튜닝과 기계 조립 중심의 장인 기술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일본의 초소형 EV 스타트업들도 비슷한 현실에 부딪히고 있다. KG모터스는 1인용 초소형 전기차 개발로 주목받았지만, 생산 규모 확대와 부품 조달 문제 해결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지방 고령층 이동수단 수요가 존재하지만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 중국 업체들과 가격 경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때 일본 지역 제조업의 상징이었던 소규모 차체 제작사들도 감소 추세다. 일본 국토교통성과 업계 단체에 따르면 후계자 부족과 생산 인력 고령화로 폐업하는 중소 자동차 가공업체가 늘고 있다. 특히 금속 성형·수작업 용접·차체 가공 같은 분야는 젊은 기술 인력 유입이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일부 업체들은 ‘장인정신의 현대화’로 활로를 찾고 있다.
토미카이라 계열 튜닝 업체들은 기존 내연기관 튜닝 기술에 전기 파워트레인 개조 기술을 접목하고 있으며, 클래식카 복원 업체들은 해외 컬렉터 시장을 겨냥한 고급 복원 사업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특히 일본 클래식카 복원 시장은 해외 부유층 수요 증가로 재조명받고 있다. 일본 장인 특유의 정밀 도색과 금속 복원 기술이 글로벌 수집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다. 일부 공방은 차량 한 대 복원에 수개월 이상 투입하며 사실상 ‘자동차 공예품’을 제작하는 수준으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AI와 디지털 장비를 활용한 변화도 나타난다. 과거 수작업에 의존했던 금형 설계와 디자인 작업에 3D 스캐닝과 AI 설계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있다. 장인의 감각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생산 효율과 품질 유지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일본식 장인 제조 문화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일본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경쟁 속에서 지나치게 효율성과 대량생산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소규모 제조사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일본 정부도 지역 제조업 보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중소 제조업 디지털 전환과 기술 계승 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동차 공방과 기술학교를 연계한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순 보조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소규모 제조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 생산업체가 아니라 ‘고부가가치 브랜드’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과거 일본 자동차 산업을 떠받쳤던 장인의 손기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전기차와 AI 중심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 이제는 그 기술을 어떻게 현대 시장과 연결하느냐가 생존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