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국제법과 법치주의를 강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재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18일 보도했다.
특히 일본은 ICC의 최대 분담금 납부국 중 하나이며, 현재 ICC 소장을 일본 출신 아카네 도모코가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태도는 큰 모순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트럼프, ICC에 제재…일본은 공동성명 불참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지난 6일, ICC 관계자와 가족, 그리고 ICC 수사에 협력한 개인들에 대한 자산 동결과 여행 금지 조처를 포함한 제재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ICC가 미국 동맹국인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포함한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에 ICC 당사국 125개국 중 79개국이 7일, “ICC의 독립성과 무결성, 공정성을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에 유감을 표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지만, 일본은 이 성명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트럼프 압박 의식했나…日 외무성 내 엇갈린 반응
일본 외무성 내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ICC 제재 조치를 수용하기 어렵고, ICC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같은 날인 7일로 예정되어 있어,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공동성명 참여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는 향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데 소극적일 가능성이 크다”며, 일본이 ICC 제재에 대한 명확한 반대 의사를 밝힐 경우 아카네 소장까지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 “ICC 침묵, 일본의 법치주의 모순”
게이오대 필립 오스텐 교수는 일본이 공동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ICC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묵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그동안 ‘법의 지배’를 내세워 온 일본으로서는 심각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본이 아카네 소장 개인의 보호에만 집중한다면, 이는 ICC 전체의 위기를 축소해서 보려는 태도”라며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할 경우 일본이 국제 사법기관에 도움을 요청해도 무시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日 정부 “조용하고 신중한 대응” 기조 유지
일본 정부 내부에서는 ICC 문제에 조용하고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ICC가 미국과 직접 대립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실리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ICC의 독립성을 지지해 온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제재에 대한 침묵이 향후 일본의 외교적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