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발효식품 된장이 일본 시장에 뿌리를 내린 과정은 김치나 고추장과 조금 다르다. 일본에도 미소(味噌)라는 강력한 전통 발효식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된장은 처음부터 일본인의 미소를 대체하는 조미료가 아니라 재일동포와 한국 음식점이 사용하는 식재료로 시장을 형성했고, 한류와 K-푸드 확산을 거치면서 독립적인 ‘한국식 발효장’으로 소비층을 넓혀왔다.
한국 된장이 일본에 언제 처음 상업적으로 수출됐는지를 보여주는 단일 공식 통계는 확인하기 어렵다. 무역통계에서 된장이 오랫동안 고추장·쌈장·혼합조미료 등과 함께 장류 또는 소스류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연도를 ‘한국 된장 일본 수출 원년’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대적인 한국 식품 유통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다. 일본에 이미 상당한 규모의 재일동포 사회가 형성돼 있었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인적·물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김치와 고추장, 된장, 참기름, 김, 라면 등 한국 식품이 재일동포 상점과 한국 음식점을 중심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1970~1980년대까지 된장의 주요 소비자는 재일동포와 한국 음식점이었다. 도쿄 우에노와 신주쿠, 오사카 쓰루하시 등 재일동포 상권을 중심으로 한국 식료품점이 성장하면서 한국산 장류의 안정적인 판매 기반도 만들어졌다. 이 시기 된장은 일본 소비자를 겨냥한 일반 식품이라기보다 한국 가정식을 만들기 위한 전문 식재료에 가까웠다.
199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 여행이 늘고 불고기와 비빔밥, 김치찌개 등 한국 음식이 일본에서 알려지면서 한국 조미료를 직접 사용하는 음식점과 소비자가 증가했다. 한국 식품업체들도 일본 시장에 현지 법인과 수입·판매망을 구축하면서 된장과 고추장 등 장류 제품 공급을 확대했다.
전환점은 2000년대 초 한류였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시작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음식으로 확산되면서 일본에서 한국 음식점과 한국 식품 전문점이 크게 늘었다. 김치와 고추장에 이어 된장찌개와 쌈장, 순두부찌개 등 한국의 일상적인 음식문화도 소개됐다.
당시 한국 농식품 해외시장 조사에서도 일본 대형 유통점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비롯한 한국 장류와 소스류, 면류 등이 판매되는 흐름이 확인된다. 한국 식품이 재일동포 시장을 넘어 일본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통시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세계적인 미소 생산·소비국이라는 점에서 한국 된장에는 쉽지 않은 시장이다. 두 제품 모두 콩을 발효해 만들지만 제조 방법과 미생물, 숙성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일본 미소가 쌀이나 보리 등에 코지균을 배양한 누룩을 사용하는 제품이 많은 반면 한국 전통 된장은 삶은 콩으로 만든 메주를 발효·숙성시키는 방식이 기본이다.
이 차이는 맛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미소에 익숙한 소비자에게 한국 된장은 처음에는 향이 강하고 거칠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된장찌개처럼 오래 끓이거나 육류·채소와 함께 조리할 경우 특유의 깊은 맛이 형성된다. 일본 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도 된장을 ‘한국 미소’인 텐장(テンジャン)으로 소개하면서 일본 미소와 풍미와 조리법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2010년대에는 일본 내 한국 식품 유통 구조가 다시 한번 변했다. 신오쿠보와 쓰루하시 등 코리아타운뿐 아니라 대형 슈퍼마켓과 수입식품점,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한국 장류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음식점에서 된장찌개를 경험한 소비자가 가정에서도 한국식 찌개와 쌈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된장 역시 ‘한국 음식점용 식재료’에서 ‘가정용 K-푸드 조미료’로 영역을 넓혔다.
2020년대 들어서는 K-푸드의 세계화가 된장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한국 소스 수출을 주도한 제품이 고추장 등 매운맛 제품이었다면 최근에는 쌈장과 된장, 간장 등 발효장류 전체를 한국 음식문화의 한 범주로 소개하는 전략이 강화됐다.
한국 정부 집계에 따르면 양념소스와 전통장류 등을 포함한 소스류 수출액은 2023년 3억8400만달러로 당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된장만을 따로 떼어 일본 수출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장류가 단순한 교민용 식품에서 해외 소비자를 겨냥한 수출식품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 된장의 일본 진출사는 일본 미소와의 경쟁 역사라기보다 두 발효문화가 서로 다른 음식 영역을 형성해 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소비자가 된장을 미소의 대체재가 아니라 된장찌개와 쌈, 나물, 고기요리 등에 사용하는 별개의 한국 발효조미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재일동포의 식탁에서 출발해 한국 음식점과 코리아타운을 거쳐 일본 대형 유통점과 온라인 시장으로 이동한 한국 된장. 일본에 이미 수백 년의 미소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한때 가장 높은 진입장벽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발효 콩 식품에 익숙한 일본 소비문화는 된장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이기도 했다.
앞으로 일본 시장에서 한국 된장의 경쟁력을 좌우할 요소 역시 ‘미소보다 나은 된장’이 아니라 ‘미소와 다른 텐장’이라는 정체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치가 일본의 절임채소와 다른 ‘김치’로 자리 잡았듯 된장도 일본 시장에서 ‘한국 미소’라는 번역을 넘어 ‘텐장’이라는 고유 식문화로 자리 잡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