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매물 감소와 전세가격 불안이 이어지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기존 집에 머무는 세입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전세 시장이 사실상 ‘매물 실종’ 상태로 접어들면서 신규 계약 대신 재계약을 선택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흐름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가운데 재계약 비중은 45.6%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비율은 전년보다 20%포인트 이상 늘어난 56.0%로 절반을 넘어섰다. 전세 물량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집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세입자들이 기존 계약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결과로 해석된다.
올해 들어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1~2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가운데 기존 계약을 갱신한 비율은 47.4%(1만6235건)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계약은 43.9%(7122건)로 집계됐다. 재계약 비중 자체가 높아진 데다 갱신권 활용 사례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전세 공급 감소는 시장 경색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023년 2월 약 5만건 수준에서 올해 2월 약 1만9000건으로 줄어들었다. 약 3년 사이 60% 이상 감소한 규모다.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약 1만6000가구로 전년보다 48% 줄어드는 점도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이후 매도 대신 보유를 선택하는 집주인이 늘면서 전세 매물 공급도 위축된 상황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은 2020년 7월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도입된 제도다. 세입자가 계약 만료 시점에 집주인에게 계약 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1회 행사할 수 있다. 기존 2년 계약에 추가 2년을 더해 최대 4년 거주가 가능하다. 갱신 시 임대료 인상폭은 기존 금액의 5% 이내로 제한된다.
권리 행사는 계약 만료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을 넘기면 갱신 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세입자의 주의가 필요하다. 의사표시는 문자메시지나 이메일, 내용증명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으나 분쟁에 대비해 기록을 남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거나 직계 가족이 거주하는 경우에는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다만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낸 뒤 실제로 다른 세입자를 들이는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기존 세입자는 월 임대료 3개월분 또는 신규 임대료와의 차액 등을 기준으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전세 시장에서는 올해도 공급 부족과 월세 전환이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신규 입주 물량 감소가 예상되면서 전세 수급 불균형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전세 매물 감소와 금리 환경 변화가 맞물리며 전세의 월세화 흐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