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그룹이 장기연체채권 소각과 채무 감면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며 취약 차주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달 말 포용금융 평가 체계를 공개할 예정인 가운데 금융권이 평가에 대비한 실적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금융은 취약 차주 9만여 명이 보유한 장기연체채권 8876억원 규모를 소각하거나 원금·미수 이자를 감면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6870억원은 소각하고, 3년 이상 연체된 고령자 및 기초생활수급자 채권 2006억원에 대해서는 원금 최대 90%와 미수 이자 전액을 감면할 방침이다.
다른 금융그룹도 유사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KB금융은 취약 차주 1만2433명을 대상으로 2785억원 규모의 채무를 감면하기로 했으며, 신한금융은 장기연체채권 5000억원을 소각하고 4조5000억원 규모의 포용금융을 공급할 계획이다. 하나금융은 3조1000억원 규모의 포용금융 로드맵과 함께 특수채권으로 분류된 개인 채권 2000억원을 소각하기로 했다. 우리금융도 장기 연체 대출에 대한 추심 중단과 미수 이자 면제 조치를 시행 중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포용금융 평가 제도와 맞물려 있다. 금융당국은 장기연체채권 소각, 채무 조정, 서민금융 공급 실적 등을 종합 평가해 금융사별 포용금융 수준을 측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평가 결과가 저조한 금융회사에는 서민금융진흥원 출연금 부담 확대 등의 조치가 적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포용금융 실적 산정 방식에 대한 논란도 제기된다. 금융권에서는 장기연체채권 상당수가 이미 회계상 손실 처리됐거나 부실채권(NPL) 관리회사로 이관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금융회사가 실제 부담한 비용보다 원금 기준 소각 규모만 강조할 경우 포용금융 실적이 과대 평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미 장부에서 제거된 채권까지 포용금융 성과로 인정될 경우 실제 취약 차주 지원 효과와 평가 수치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단순 소각 금액보다 실질적인 수혜 규모를 평가 기준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순덕 주빌리은행 이사는 “채권 소각 규모뿐 아니라 실제 혜택을 받은 차주 수, 감면 금액, 소멸시효 연장 중단 여부 등 실질적인 지원 효과가 평가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공개할 포용금융 평가 체계가 단순 규모 경쟁을 넘어 실질적인 취약계층 지원 효과를 얼마나 정확히 반영할 수 있을지가 향후 제도의 신뢰성을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