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바시 교량 중앙의 도로원표는 에도 막부 시대부터 일본 전국 도로망의 출발점을 상징해 왔다. 1603년 에도를 중심으로 오카이도(五街道)를 규정하며 설치된 이치리즈카와 함께, 니혼바시 도로원표는 행정·군사·경제 활동의 효율적 통제를 위한 국가 권력의 공간적 선언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1911년 화강암 기둥형 표지로 재건된 이 기점은 국도와 고속도로 표지판에 ‘도쿄까지 ○○km’로 표시되는 거리의 기준이 되며, 현대 일본 교통망 설계의 핵심 좌표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광화문 인근 보행로에 새겨진 한국의 도로원표는 1914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경성과 각 도 사이 거리 측정의 기준점으로 지정하며 설치했다. 전통적 궁성 축을 벗어나 ‘제로 지점’을 새롭게 설정함으로써 토목공학적 좌표를 넘어선 식민 도시계획의 핵심 철학을 반영했다. 광화문 사거리 한복판에 둔 이 기준점은 행정과 금융, 언론, 물류 기능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기능적 효율을 중심으로 재정의된 근대 서울의 공간 질서를 보여 준다.
두 도로원표는 단순한 거리 측정을 넘어, 근대 국가가 ‘어디에서부터 지배를 시작할 것인가’를 공간적으로 선언한 물리적 증표다. 방사형으로 뻗은 도로망의 출발점이자, 도시 디자인과 국가 권력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입증하는 도시사적 단서로서, 동아시아 근대 공간 권력의 기원을 동시에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