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상에 산과 들, 바다를 담다…전라도 음식의 묘미

전라도 음식을 이야기할 때 흔히 ‘푸짐하다’는 표현부터 나온다. 하지만 전라도 음식의 진짜 매력은 반찬의 가짓수에만 있지 않다. 넓은 평야에서 나는 곡식과 채소, 서·남해의 해산물, 산간 지역의 나물과 발효 음식이 한 상에서 조화를 이루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전라도는 예부터 식재료가 풍부한 지역이었다. 호남평야에서는 쌀과 각종 농산물이 생산됐고, 서해와 남해에서는 생선과 조개류, 젓갈 재료가 공급됐다. 여기에 내륙 산지의 산나물과 장류 문화가 더해지면서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음식문화가 발전했다.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한정식과 백반이다. 전주시는 현재 한정식과 비빔밥, 콩나물국밥, 돌솥밥, 오모가리탕, 전주백반, 폐백음식 등 7개 품목을 향토음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전주비빔밥은 여러 나물과 고기, 고추장 등을 한 그릇에 담아 섞어 먹는 음식이다. 각각 다른 맛과 식감이 마지막에는 하나로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전라도 음식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콩나물국밥은 오히려 단순함이 매력이다. 콩나물과 밥, 김치와 육수가 기본이지만 육수를 내는 방식과 콩나물의 식감, 김치와 젓갈의 맛에 따라 전체 풍미가 달라진다. 한국관광공사도 콩나물국밥을 비빔밥, 한정식과 함께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전라도 밥상의 또 다른 특징은 ‘곁들이는 음식’에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밑반찬으로 지나칠 수 있는 김치와 장아찌, 젓갈, 나물 하나에도 상당한 손이 들어간다.

김치는 배추김치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갓김치와 파김치, 고들빼기김치, 열무김치 등 계절과 지역에 따라 종류가 달라진다. 젓갈도 새우젓과 멸치젓 등을 비롯해 다양한 재료가 김치와 반찬의 맛을 만드는 데 쓰인다.

발효와 숙성 역시 전라도 음식에서 빼놓기 어렵다. 바로 조리해 먹는 음식뿐 아니라 장과 김치, 젓갈처럼 시간을 들여 맛을 만들어내는 음식이 밥상의 깊이를 더한다.

전남으로 내려가면 바다의 존재감이 더욱 강해진다.

목포와 신안 일대에서는 홍어가 대표적이다. 삭힌 홍어에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김치를 곁들이는 홍어삼합은 각기 강한 재료가 입안에서 균형을 이루는 음식이다. 홍어 특유의 향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지만, 전라도 발효 음식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벌교를 중심으로 한 꼬막 음식도 남도의 맛을 상징한다. 꼬막을 삶아 그대로 먹기도 하고 양념을 얹거나 밥에 비벼 먹는다. 게장과 낙지, 세발낙지, 민어 등 서남해에서 나는 해산물 역시 지역 밥상을 풍성하게 만든다.

담양의 떡갈비와 죽순요리, 광주의 떡갈비, 순창의 고추장과 장류처럼 내륙 지역에서는 육류와 농산물, 발효식품을 활용한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같은 전라도 안에서도 해안과 평야, 산간 지역에 따라 음식의 성격이 상당히 다른 이유다.

전라도 음식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한 가지 강한 맛’보다 서로 다른 맛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짠 젓갈에는 담백한 나물이 따라오고, 기름진 고기에는 묵은김치가 붙는다. 매운 양념 옆에는 국이나 나물이 놓인다. 여러 반찬이 한꺼번에 등장하지만 각각의 역할이 있다.

그래서 전라도의 백반은 단순히 반찬이 많은 식사가 아니다. 밥을 중심으로 국과 찌개, 나물, 김치, 젓갈, 생선이나 고기 반찬이 서로 맛을 보완하는 하나의 식사 체계에 가깝다.

상차림 문화도 중요한 요소다. 전주 한정식에서는 여러 종류의 반찬과 국, 찌개, 전, 생선, 고기 등이 순차적으로 혹은 한 상에 함께 오른다. 한국관광공사는 전주 한정식과 백반의 특징으로 해산물과 곡식, 산나물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풍성한 상차림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전라도 음식의 묘미를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차리는 음식’으로만 설명하면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핵심은 좋은 재료를 버리지 않고 제철에 먹고, 남은 것은 말리고 삭히고 장에 담가 다시 먹는 생활의 지혜에 있다. 봄에는 나물, 여름에는 채소와 해산물, 가을에는 곡식, 겨울에는 김장김치와 저장음식이 밥상의 중심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전통 음식도 새로운 형태로 변하고 있다. 전주는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서 향토음식업소 발굴과 음식관광 활성화를 이어가고 있다.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같은 전통적인 음식뿐 아니라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새로운 먹거리도 등장하고 있다.

결국 전라도 음식의 힘은 화려한 한 접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밥 한 그릇 앞에 김치와 나물, 젓갈과 생선, 국 한 그릇을 차려놓고 서로 다른 맛을 조금씩 오가며 먹는 데 있다. 바다와 들판, 산에서 얻은 재료에 발효와 손맛, 시간이 더해지면서 한 끼가 완성된다.

전라도에서 음식은 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 계절을 저장하고 손님을 맞으며 가족과 이웃이 한 상을 나누는 생활문화였다.

수많은 반찬 가운데 어느 하나만 주인공이 되지 않고 서로의 맛을 살려주는 것.

그것이 전라도 음식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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