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쿄’가 말하는 건축가의 역할 전환

한국에서 도쿄를 떠올리면 롯폰기힐즈나 시부야 재개발처럼 초고층 중심의 거대 개발 이미지가 먼저 연상된다. 그러나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구마 겐고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도쿄의 미래는 ‘거대 도쿄’가 아니라 ‘작은 도쿄’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인식은 저널리스트 기요노 유미와의 대담을 엮은 『구마 겐고의 도쿄 토크: 작고 느슨한 방식으로 도시 만들기』(인벨로프, 2025)에 집약돼 있다. 책은 도시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와 건축가의 역할 변화를 동시에 다룬다.

구마는 건축가를 ‘작은 도시 전환’의 주체로 규정한다. 20세기 건축가를 자신만의 미학에 몰두한 ‘무사’에 비유하며, 폐쇄적인 설계자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대안으로 제시한 개념이 ‘건축주 건축가’다. 설계에 그치지 않고 기획, 자금 조달, 건설, 운영까지 책임지는 방식이다. 구마는 수억 엔의 부채를 짊어지고 18년간 상환하며 이 전환을 체득했다고 밝힌다.

이 논의는 이론에 머물지 않는다. 구마가 실험한 ‘작은 도쿄’는 셰어하우스, 이동식 트레일러, 폐자재로 만든 소규모 주거 등으로 구현됐다. 대규모 개발이 아닌, 작고 유연한 공간들이 도시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작은 건축과 건축주 건축가의 결합은 건축가가 단순한 공간 설계자를 넘어, 공간을 기반으로 한 창업자이자 운영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구마가 말하는 자유를 위한 도시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도시다. 건축가는 물론 개인 역시 스스로 건축주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설계하고, 이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구축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크리에이터 경제를 자아 실현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대목이다.

다만 책을 읽으며 한 가지 공백도 드러난다. 논의가 건축에서 맨션이나 단지, 그리고 곧바로 도시로 도약하며 ‘동네’라는 중간 단계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작은 도쿄가 지속 가능하려면, 그리고 크리에이터 건축가가 성공하려면 동네 단위의 설계와 생태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남는다. 동네가 살아 있어야 개인 건축가와 크리에이터의 실험도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수적으로 도쿄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단서도 제시된다. 스타벅스 로스터리가 나카메구로에 입점한 배경에는 해당 부지가 공장 준공이 가능한 준공업지역이라는 도시계획적 조건이 있었다는 점이다. 나카메구로의 현재 장소가 준공업지역이라는 사실은 도쿄의 공간 구조를 새롭게 보게 한다.

대담집이라는 형식의 한계는 있지만, 도쿄를 ‘작게’ 읽어내는 가이드로서 이 책의 효용은 분명하다. 도쿄의 미래와 건축가의 역할 변화를 함께 고민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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