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내부 이념 재정렬과 실용연합의 부상
2025년 일본 정치의 중심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1961년생)로 모인다. 그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서 자민당(自由民主党·LDP) 내 권력 질서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자민당은 1955년 결성 이후 보수 일당 체제를 유지해온 일본의 지배정당으로, 내부에는 여러 파벌이 존재한다.
다카이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1954~2022)의 핵심 후원 인물로, 보수적 안보 노선과 국가 정체성 회복을 강조하면서도 ‘정책 실현 우선’을 내세운 실용 보수주의(Pragmatic Conservatism)를 표방한다. 이러한 노선은 아소 다로(麻生太郎·1940년생), 스가 요시히데(菅義偉·1948년생),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1981년생) 등 자민당 내 주요 세력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다카이치 체제의 부상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자민당 내 이념 재정렬과 세대 간 권력 이동을 의미한다. 보수의 명분과 실용의 기술이 충돌하며 새로운 권력이 형성되고 있다.
이 같은 내부 재편은 일본 정치 전반의 연립 및 협력 구조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자민당은 오랜 기간 공명당(公明党)과 연립정권을 유지해왔으나, 최근 사이토 데쓰오(斉藤鉄夫·1952년생) 대표가 ‘연립 이탈론’을 언급하며 균열이 감지된다. 반면 국민민주당(国民民主党) 대표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郎·1969년생)는 정책 단위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고, 일본유신회(日本維新の会)의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1975년생)도 헌법 개정과 지방분권 등에서 자민당과의 공조를 타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 정치가 ‘보수 대 진보’ 구도를 넘어 정책 실현 능력과 연합 가능성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55년 체제의 말기적 파벌 중심 정치가 ‘정책 중심 실용연합’으로 변모하는 국면이다.
결국 다카이치 사나에의 부상은 일본 정치가 이념의 시대에서 기능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보수의 상징이 여성 리더를 내세우고, 중도세력이 실용주의를 매개로 재결합하는 지금의 일본은 권력 교체가 아닌 정치 구조의 진화를 보여준다. 그 핵심에는 ‘이념보다 실행, 충성보다 협력’이라는 새로운 통치 철학이 있다. 이는 일본 민주주의가 균형을 찾아가려는 조용한 진화의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