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용품 유통기업 다이소의 성공은 화려한 경영 이론이나 대규모 자본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시작된 한 창업자의 시행착오와 ‘불편을 없애려는 집요함’이 세계적인 균일가 유통 모델을 만들었다.
다이소 창업자 야노 히로타케는 1943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났다. 의사가 많은 엘리트 가정에서 자랐지만, 학업 성적은 가족 중 가장 뒤처졌고 대학 입시에도 여러 차례 실패했다. 그는 스스로를 “운도 재능도 없는 사람”이라 평가하며, 그 점이 오히려 바닥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고 회고했다.
도쿄 주오대 야간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 장인의 양식업을 물려받았으나 3년 만에 파산했다. 이후 백과사전 방문판매, 볼링장 직원, 골판지·제지 수집업 등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전전했다. 이 같은 실패의 경험은 훗날 다이소식 경영 철학의 토대가 됐다.
1972년 그는 트럭 한 대로 일본 전역을 돌며 생활용품을 파는 이동 노점상을 시작했다. ‘야노상점’이라는 이름으로 트럭 적재함에 물건을 펼쳐 놓고 비가 오면 덮고, 해가 나면 다시 여는 방식이었다. 가격표도 계산대도 없는 장사였다.
전환점은 손님들의 반복되는 가격 문의였다. 그는 즉흥적으로 “전부 100엔”이라고 답했고, 이 단순한 응답이 이후 일본 유통사를 바꾼 균일가 전략으로 발전했다. 가격을 하나로 통일함으로써 계산과 진열, 재고 관리가 획기적으로 단순해졌다.
야노는 1977년 회사를 다이소산업으로 법인화하고 100엔 균일가 사업을 본격화했다. 초기에는 ‘값싼 잡화점’이라는 평가도 따랐지만, 그는 직접 상품을 기획하고 품질을 끌어올려 ‘싸지만 쓸 만한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100엔숍에 대한 저품질 인식을 뒤집었다.
다이소 성장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모든 상품을 단일 가격으로 운영해 효율을 극대화한 운영의 단순화, 가격 비교를 없애 충동구매를 유도한 소비 심리 설계, 국내외 제조업체와의 협력을 통한 대량조달 체계 구축이다. 이 구조가 맞물리며 다이소는 빠르게 확장됐다.
1991년 가가와현 다카마쓰에 첫 직영점을 연 이후 다이소는 일본 전역으로 퍼졌고, 100엔숍 문화 자체를 일상에 정착시켰다. 저렴하지만 가볍지 않은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며 생활의 일부가 됐다.
한국 다이소의 시작은 1997년 서울 천호동의 작은 생활잡화점이었다. 이후 박정부 회장이 이끄는 아성산업이 일본 다이소와 손잡고 2001년 합작법인 아성다이소를 설립했다. 일본 다이소는 약 38억 원을 투자해 34.21%의 지분을 확보했다.
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당시 ‘천 원이면 살 수 있다’는 콘셉트는 위축된 소비 심리와 맞물렸다. 일본식 균일가 시스템과 한국형 유통 감각이 결합되며 ‘천 원 숍’ 문화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2023년에는 아성HMP가 일본 다이소가 보유하던 지분 34.21%를 약 5,000억 원에 인수하며 완전한 국내 기업으로 전환됐다. 초기 투자금 38억 원이 5,000억 원으로 불어난 셈으로, 일본 기업의 해외 투자 사례 중에서도 손꼽히는 성과로 평가된다.
야노 히로타케는 생전 “기업은 언제든 망할 수 있다”고 말하며 화려한 경영 기법보다 불편을 없애는 단순함을 중시했다. “경영을 배운 적은 없고, 단지 불편을 해결하려 했을 뿐”이라는 그의 말은 다이소의 철학을 상징한다.
2024년 2월 12일, 그는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다이소 본사 창고 한편에 붙은 문구는 여전히 그의 출발점을 말해준다. ‘트럭 한 대에서 시작했다.’ 이 문장은 다이소의 역사이자, 길거리 트럭 위에서 유통의 방식을 바꾼 한 인생의 요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