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오쿠보 오쿠보 도오리의 상권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한 사랑의 나눔 김운천 회장을 만나, 지금까지의 사업이야기, 사회 환원과 봉사활동, 비전,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김운천 회장님, 간단하게 본인 소개와 사업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네, 안녕하세요. 저는 김운천입니다. 일본에서 요식업과 화장품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명동김밥’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9년 4월 17일에 자선단체 ‘사랑의 나눔’을 설립하여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일본에 오기 전 까지는 한국에서 유치원 사업을 21 년 간 해왔습니다. 일본에서 복지학을 더 공부해 볼까도 하다가 언어의 장벽이 너무 커서 사업을 하게 되었어요. 예전에 서울 텔레콤이라고, 국제전화카드 사업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2006년에 일본에 왔어요. 장터부터 시작해서 호텔 곳곳에서 판매를 했습니다. 그러다 사무실에서 펜대만 굴리면 성공을 못한다고 하는 언니의 권유로, 일본어학교에서 오전에는 일본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장터에서 식재료 다듬는 일부터 시작하여, 언니가 하는 고려 야키니쿠 일도 도왔습니다.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명동김밥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진짜 한국의 맛을 일본에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Q: ‘명동김밥’ 브랜드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 주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언니가 운영한 전통찻집에 자주 오시던 배용준씨 팬클럽분들이 수 십 명 계셨어요. 거기서 60명 80명 씩 모여서 배용준씨 응원도 하고, 같이 이벤트도 하고 그러셨어요. 그 분들이 명동김밥 오픈시에 일본인의 관점에서 정말 많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메뉴판을 보기 쉽게 개선하고, 가게 입구의 입간판을 가게 안의 벽에 메뉴들을 소개해서 붙이고, 장터에 파는 수 많은 음료들을 같이 판매하는 등 여러가지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명동김밥의 성공 뒤에는 장터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음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현지화는 중요하겠지만, 한국의 맛을 그대로 사용해서 레시피를 내기 시작했더니 의외로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이런 것들이 성공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요식업과 화장품 사업을 전개하면서 겪었던 가장 큰 도전과 이를 극복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는 야키니쿠집도 했었어요. 잘 안되어 접었습니다. 또 화장품은 붐이 일어나서 너무 해보고 싶더라고요. 근데 신오쿠보가 자리가 잘 안 나요. 그러다 우연히 새로 생긴 건물에 자리가 났는데, 신청자도 많고,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주춤하고 있었는데 그 주인이 찾아와서, 저한테 기회를 주셨어요. 용기있게 바로 하겠다고 말을 했는데, 한 번도 안 해 본 사업을 갑자기 80 몇 평의 큰 매장을 맡아서 하려니 막막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전문가를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배열부터 다 배우고, 어떻게 시작하는지, 어떻게 직원 교육을 시키는지, 사람들을 모아서 도움도 받고 했었죠. 그때 연예인들 상품이 최고였고, 비디오나 CD 같은 것들이 엄청 잘 팔렸습니다.
Q: 일본 내에서 ‘한류 붐’을 일으키는 데 있어 김 회장님의 사업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 사업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고, 한류 붐으로 인해 저희 사업이 엄청난 혜택을 본 것이지요. 한류 붐이 저한테는 큰 삶의 변화, 그리고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저희 사업이 이렇게 큰 것도 한류 덕분이거든요. 저는 정말 감사드려요. 그래서 제가 지금도 연예인이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오면 다 모시고 와서 식사도 대접하고 합니다. 저를 살게 한 분들이고, 다 그 분들 덕분이거든요. 제가 화장품 가게 초창기에 동방신기가 인기가 엄청났었어요. 그 덕분에 제가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동방신기 향수가 엄청 유행을 했거든요. 그 분들 덕분에 이렇게 지금까지 감사히 살고 있으니, 제가 그 정도로 베푸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한류의 붐에 따른 코리아 타운에서의 관련사업은 그때와 지금과는 또 다른 양상입니다만, ‘한류는 변해도 음식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예전에 한 적이 있어요. 일본분들이 집에서는 매운 음식을 잘 안 드시지만, 가끔 매운 음식 드시고 싶으실때는 신오쿠보 오셔서 순두부찌개도 드시고, 떡볶이도 드시고 그러세요. 그런 모습들 보면서 제가 놀라곤 합니다.
Q: 2019년에 자선단체 ‘사랑의 나눔’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이제 어느 정도 벌었으니, 사회에 환원을 해야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2011년에 동일본대지진이 났을 때 장사를 그만 두신 분들이 꽤 많아요. 그때 저도 형제들이 너무 걱정을 해서 한국에 있다가 일본에서 어느 날 전화가 온 거예요. 명동김밥에 지금 손님이 너무 많아서 쇼쿠안도오리까지 줄이 늘어서고 난리가 났는데,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냐고요. 형제들의 걱정을 뿌리치고 바로 일본으로 왔습니다. 지진 이후에 와서 보니 저희 가게가 바글바글한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더라고요. 부엌에 서서 앞을 보면 손님들이 이렇게 다 보이잖아요. 세상에 저렇게 매운 한국음식을 어쩌면 저렇게 맛있게 드시면서 웃으시면서 할까. 그게 너무 감동이었어요.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명동김밥 2호점 3호점을 오픈하고 삼겹살집도 오픈을 하고, 3개월 4개월 번 돈을 하나도 안 쓰고 지진피해자분들에게 다 보냈어요. 어떻게 보내는지도 몰랐었는데, 적십자를 통해서 보내면 된다고 은행에서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더 일본분들에게 봉사를 하게 되고, 다른 재해지역에도 기부금을 보내게 되었어요.
저희 가게에는 저금통을 하나씩 놔뒀어요. 그래서 각각 모인 돈들을 걷어서 1년에 한 번씩 적십자에 기부를 해요. 그리고, 재해지역이 아닌 고아원도 좀 도와줄까 하고 보니, 일본 고아원은 참 잘 되어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고아원도 도와주고,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들, 장애인들도 도와줬습니다. 특히, 거동에 큰 불편함이 있는 시각장애인들과 척추장애인들을 도와줬습니다.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도 도와줬고요. 그리고, 경제위기나 분쟁, 재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제3세계의 어린이들을 격려하고 희망을 심어주는 후원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이고자, 2019년 사랑의 나눔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Q: ‘사랑의 나눔’ 단체의 주요 활동과 성과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몽골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라오스의 고아원과 초등교육 시설을 방문해서 그쪽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기증하고 어린이들을 격려했습니다. 칠판도 없고, 놀이기구도 없고, 신발도 없는 경우도 있었어요. 학용품, 체육복, 선풍기, 세탁기 등 필요한 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10월에 바자회를 해요. 올해는 10월 26일 9시부터 17시까지 이화여고에서 합니다. 일본의 사단법인 ‘사랑의 나눔’과 한국의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과 같이 100 명에서 120 명 정도 참가를 해서 나온 수익금은 방과후에 보호자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어린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친구들’은 고 이희호 여사님이 설립을 하신 단체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저희와 자매결연을 맺어서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아프리카 잠비아와 아이티공화국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잠비아에서는 한 지역에 우물을 파서 식수를 공급하는 프로젝트와 의료지원을 하고 있으며, 아이티공화국에서는 교육 지원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명을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50명 까지 숫자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도움이 필요한 지역에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Q: 사업과 자선활동을 병행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아이들의 맑은 눈빛과 선한 웃음을 볼 때 입니다. 그 순간이 굉장히 감동적이예요. 그 아이들의 마음과 미소에 정말 감사해요. 여러 나라들의 열악한 고아원에서도 해맑은 아이들의 눈을 보면 제가 눈물이 나서 눈을 못 보겠더라고요. 저희들을 너무 열심히 환영해주고 하는 것도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안타깝고, 같이 가신 분들도 많이들 눈물을 흘리셨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감동을 받고 더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Q: ‘사랑의 나눔’을 통해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더 많은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목표이고요.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나 난민 어린이들을 도울 생각입니다. 그 다음이 시각장애인들 척추장애인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지셨지만, 장애인으로서 인정을 못 받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저희들이 열심히 도와드리고 싶고요. 저희 사랑의 나눔의 모든 회원분들이 봉사하는 모임이라, 저는 그 분들에게 책임을 줘서 프로젝트를 각자 맡아 꾸려나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일본이던, 한국이던 세계의 어느 나라이던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이웃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Q: ‘신오쿠보 클린활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 지역이 활성화 되면서 쓰레기 문제들이 참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이미지와 환경개선을 위해서 사랑의 나눔 회원분들을 위주로 청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이 깨끗해야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질 것이고, 그래야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도 기분 좋게 식사도 하시고, 쇼핑도 하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요즘은 비회원이신 분들도 오시고 유학생이 참가하기도 합니다. 매월 첫째 주 수요일 오후 4시부터 합니다.

Q: 앞으로의 사업 확장 계획이나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앞으로는 지금 이 건물이 목조건물이라, 새로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냉동식품업으로도 사업을 확장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맛과 수익이 보장되는 조건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Q: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나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남을 배려하는 젊은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갑자기 성공을하는 것이 아니예요. 배려를 하면서 그냥 열심히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성공을 하는 거예요. 배려심이 많이 없으면 삭막해지는 것이고, 남을 배려를 하다 보면 사랑이 싹트거든요. 그래서 저는 항상 사랑의 씨앗을 뿌리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씨앗을 뿌리면 그 사랑이 자라서 또 그 모든 사람들이 또 사랑을 먹고 자라서또 사랑이 또 이루어지고 그래서 모든 분들이 행복한 삶이 되기를 바래요. 그러니까 남에게 칭찬 한 가지 씩이라도 해주고 배려하면서 살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김 회장님. 앞으로도 많은 성공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어: 송원서 (민주평통 글로벌 특위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