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그룹의 지배구조는 한국에서 발생한 수익은 미국 델라웨어로 이전되지만, 경영 실패와 사고의 책임은 한국 법인과 현장 노동자에게 귀속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핵심은 최상위 지배회사인 쿠팡Inc가 델라웨어 법인이라는 점과, 이 회사를 장악한 김범석 의장의 압도적 의결권이다.
쿠팡Inc는 한국 쿠팡㈜ 지분 100%를 보유하고, 쿠팡㈜는 배송·물류·자체브랜드 등 주요 계열사를 모두 100% 지배한다. 지배의 사슬은 단일 방향으로 완결돼 있으며, 그 정점에서 김범석 의장은 클래스B 주식으로 1주당 29표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지분율은 10% 미만이지만 의결권은 70%를 넘는다. 한국 상법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구조다.
델라웨어 상법의 특징은 ‘기본값은 1주 1표지만, 정관에 다르게 쓰면 허용’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복수의결권, 집중투표 배제, 소송 관할의 단일화가 모두 정관으로 가능하다. 쿠팡Inc 정관은 집중투표를 금지했고, 내부 분쟁의 관할을 델라웨어 형평법원으로 한정했다. 한국 투자자나 이해관계자가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한국 법원이 아닌 델라웨어에서 다퉈야 한다.
책임 문제에서도 차이는 분명하다. 델라웨어 상법은 이사의 ‘주의의무 위반’에 대해 금전적 배상을 면제하는 조항을 정관에 둘 수 있다. 고의적 사익 추구가 아니라면, 중대한 판단 착오나 관리 실패가 있어도 개인 책임은 면제될 수 있다. 쿠팡Inc 정관은 이 면책을 ‘법이 허용하는 최대 범위’로 명시했고, 향후 법이 더 완화되면 자동으로 면책 범위가 확대되도록 설계했다.
반면 한국 상법은 과실만으로도 이사에게 연대 배상 책임을 묻는다. 김범석 의장은 2021년 한국 쿠팡㈜의 모든 공식 직책에서 사임해 한국 법체계상 직접 책임을 묻기 어려운 위치로 이동했다. 공정당국이 동일인을 법인이 아닌 개인으로 특정하지 않은 점도, 실질적 결정권자에게 책임을 연결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쿠팡 그룹에서는 권한은 델라웨어의 지배회사와 그 의결권을 장악한 개인에게 집중되고, 사고와 분쟁의 책임은 한국 법인과 현장에 남는다. 이는 2000년대 이전 한국 재벌에서 보였던 ‘지배력은 있으나 책임은 없는’ 구조가 국경과 법인 형태만 바꿔 재현된 사례다.
시장 규제의 핵심은 권한과 책임의 일치다. 법인의 국적이나 등록지가 어디든,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결정하는 주체에게 책임을 연결하지 못하면 규제는 공백이 된다. 쿠팡 사례는 델라웨어 상법과 한국 상법의 틈새가 어떻게 ‘무한 면책’으로 귀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면, 동일한 구조는 다른 글로벌 기업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