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제주산악연맹 원정대는 네팔 동부 샤르푸5봉(6,328m)을 초등했다고 발표했지만, 언론에 공개된 사진 속 장면은 등정의 진위를 의심케 했다. 정상에 오른 모습이 아닌 암벽 앞에 머무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등정 기록의 진실성 문제를 다시 한번 국내 산악계에 던지는 사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산악계의 ‘등정증’ 신뢰 문제
원정대는 네팔 정부로부터 받은 등정증을 증거로 제시했지만, 국제 산악계에서는 네팔 관광청의 등정증 발급 과정이 검증 없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신뢰를 두지 않는다. 미국의 저명한 산악 연감은 초등 기록을 치밀하게 검증한 뒤 수록하는데, 이는 한국 산악계에도 요구되는 기준이다. 검증 없는 기록 인정은 장기적으로 국내 산악계의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
반복되는 허위 보고, 한국 산악계의 숙제
1962년 경희대산악부의 히말라야 원정대 보고서에서 시작된 허위 등정 보고는 이후에도 반복됐다. 1989년에는 ‘등정의혹 14개 팀’이라는 폭로 기사가 나왔고, 몇몇 팀은 진실을 고백했으나 대부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위스 등반가 율리 스텍이 안나푸르나 남벽을 등정한 뒤 증빙 사진이 없어 논란이 일었던 사례처럼, 등정 기록의 진실성 문제는 국제적인 논의 대상이다.
등반의 진정성을 위한 문화적 변화 필요
산악계 내에서 실패한 도전조차도 인정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과 언론의 지나친 기대 속에서 성과를 부풀리는 관행을 벗어나, 미등정이라도 시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는 산악인의 자기 고백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등반 기록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등정의 입증 방법과 미래 과제
히말라야 등정을 입증하려면 정상에서 찍은 사진, 주위 환경의 구체적 묘사, 현장에 남긴 물품 등을 통해 증빙해야 한다. 최근에는 GPS 트랙도 사용되지만, 극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산악계 내부적으로 검증 기준을 강화하고, 공론화를 통해 등반 기록의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악계의 ‘등정 프리미엄’이 영웅적 이미지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도전의 과정을 서로 공유하고, 실패를 존중하며, 진실성을 바탕으로 한 기록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국제적 산악계에서 한국 산악의 입지를 강화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