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난 12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약 6시간 동안 유례없는 혼란과 긴장 속에 휩싸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전격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신속한 해제 결의, 그리고 계엄군의 국회 진입과 철수가 연이어 벌어진 이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시간대별로 긴박했던 상황을 자세히 정리한다.
1.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 비상계엄 선포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 선포는 전국에 생중계되며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2. 오후 10시 49~56분: 여야 대표의 강력 반발
선포 20분 만에 여야 대표들은 즉각적으로 “위헌”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국민과 함께 계엄령을 막겠다”고 선언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 여러분, 국회로 모여 민주주의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3. 오후 11시 4분: 국회 출입문 폐쇄
국회의 긴급 본회의 소집이 공지된 가운데, 경찰은 국회 출입문을 폐쇄하며 의원들의 진입마저 저지했다. 이에 국회 주변은 시민들과 경찰 간 충돌로 혼란이 극대화되었다.
4. 오후 11시 25~47분: 계엄사령부 설치와 포고령
계엄사령부가 설치되며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제1호 포고령은 모든 정치 활동 금지를 포함하며, 군은 전 지휘관들에게 비상대기 지시를 내렸다.
5. 12월 4일 오전 0시 7~40분: 무장 특수부대의 국회 진입
계엄군은 국회 경내에 진입하며, 경찰은 을호비상을 발령했다. 무장군의 움직임은 시민들과 정치권에 더 큰 불안을 조성했다.
6. 오전 0시 45분: 계엄군 국회 본청 점령
군 병력은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내부로 진입했다. 이를 막기 위해 의원 보좌진과 직원들은 소화기를 분사하며 격렬히 저항했다.
7. 오전 1시: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군 병력의 물리적 진압 시도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원들의 결의가 빛났다.
8. 오전 1시 8분: 계엄군 철수
결의안 가결 직후 우원식 국회의장은 “군 병력은 즉각 국회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이에 계엄군은 국회에서 철수했다.
9. 오전 4시 27분: 대통령의 계엄 해제 선언
윤 대통령은 두 번째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 결의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히며 국무회의를 통해 계엄령을 해제할 것을 발표했다.
10. 오전 4시 30분: 국무회의 계엄 해제 의결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이 공식적으로 의결되며, 6시간에 걸친 비상 상황은 종결되었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중요한 시험대였다. 계엄령 선포와 해제 과정에서 여야 간의 대립, 시민사회의 반응, 그리고 긴박한 국회의 대응은 향후 한국 정치와 법적 시스템에 대한 깊은 논의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