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의 보이지 않는 기둥,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2004년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를 명분으로 도입된 고용허가제가 올해로 21년째를 맞았지만, 제도는 여전히 ‘허가된 착취’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이주노동자는 약 150만 명. 이 중 34만 명(2025년 6월 기준)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일하고 있다. 농어촌과 제조업 현장의 절반 이상은 이 제도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이들이 생산과 소비로 만들어내는 경제효과는 연 150조 원에 달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삶은 그 무게만큼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외국인고용법 제25조의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이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주 동의 없이는 일터를 바꿀 수 없다. 체류기간 3년 동안 최대 3회까지만 이직이 가능하며, 퇴사 후 3개월 안에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강제 출국된다. 이 때문에 폭언·폭행, 임금 체불,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7월 전남 나주의 벽돌공장에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가 지게차에 벽돌과 함께 묶여 끌려다니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줬다. 피해자는 고용허가제 노동자로, 사업주에게 피해를 호소했지만 묵살당했다. 이후 여론이 들끓고 나서야 겨우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같은 제도 아래 네팔·베트남 청년들의 산업재해와 극단적 선택이 이어졌지만 제도 개선은 여전히 더디다.
숙소 환경 또한 인권 사각지대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절반은 사업주가 제공한 기숙사에 거주하지만, 상당수는 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 불법 가건물이다. 난방조차 없는 숙소에서 사망한 사례가 있었음에도, 현장은 여전히 “단기간 해결은 어렵다”는 행정 논리 속에 방치돼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일할 권리보다, 일터를 떠날 자유를 달라”고 말한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이들이 합법의 틀 안에서 비인간적인 제약에 묶여 있다는 점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21년 전 만들어진 제도가 ‘국익’을 명분으로 개인의 기본권을 희생시키고 있는 지금, 고용허가제는 개편이 아닌 근본적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