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정권은 일본 사회에서 ‘손타쿠(忖度)’라는 단어를 정치적 키워드로 부각시킨 시기였다. 손타쿠는 원래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중립적 의미였으나, 아베 시절에는 권력자의 의중을 짐작해 행동하는 행위로 변질됐다.
대표적 사례는 2017년 모리토모 학원 사건이다. 당시 국유지가 헐값에 매각된 의혹이 불거지자 학원 측은 “총리 부부의 뜻을 손타쿠했다”고 발언했다. 명시적 지시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관료들이 권력자의 의지를 과잉 해석해 움직였다는 의혹은 일본 정치 전반에 충격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행정문서가 조작·폐기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손타쿠는 권력형 부패와 책임 회피의 상징어로 자리잡았다.
손타쿠는 언론계와 기업에도 퍼져 있었다. 아베 집권기 NHK 등 주요 언론은 정권의 눈치를 보며 기사 방향을 조정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업 스캔들에서도 상사의 의중을 추정해 불법적 회계 처리나 부적절한 계약을 진행한 사례가 반복됐다. 이처럼 손타쿠는 조직 구성원이 책임을 지지 않고 상사의 의중에 복종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비판 여론은 컸다. 일본 사회가 본래 중요시해온 ‘배려’와 ‘조화’가 권력 앞에서는 굴종과 자기검열로 변질됐다는 지적이었다. 정치학자들은 손타쿠가 일본식 권위주의 정치문화의 부산물이라 분석했다. 상명하복적 구조와 책임 회피의 풍토가 결합하면서, 명시적 지시 없이도 권력이 은밀히 작동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 이후에도 손타쿠라는 말은 일본 사회의 병폐를 설명하는 상징어로 남아 있다. 배려의 미덕이 권력의 그림자와 만나면서 어떻게 부패와 왜곡을 낳는지 보여준 사례가 바로 아베 시대의 손타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