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한국 대중가요계에 등장한 곡 ‘나성에 가면’은 단순한 러브송을 넘어 당시 한국 사회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한 노래로 평가된다. ‘나성(羅城)’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의 옛 한글 표기이자, 1960~70년대 미주 한인 이민자들의 대표적 정착지를 의미했다.
노랫말 속 ‘편지를 띄우세요’라는 구절은 오늘날의 이메일·메신저 대신 해외 소식을 전하는 주요 수단이었던 항공우편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것은 곧 ‘멀고 오랜 이별’을 뜻했고, 남겨진 사람은 편지와 사진으로만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꽃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어보내요’, ‘예쁜 차를 타고 행복을 찾아요’라는 가사는 미국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풍요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1970년대 한국은 경제개발이 한창이었지만, 서구 문화와 미국식 생활양식에 대한 선망이 여전히 강했다. 노래 속 나성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자유롭고 풍족한 삶의 상징이자 ‘꿈의 땅’으로 그려졌다.
또한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라는 대목은 당시 이민 과정에서 가족이 갈라져야 했던 현실을 비춘다. 경제적 이유, 이민 비자 문제 등으로 한 가족이 함께 출국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고, 이별의 슬픔은 해외 이민자 가정의 공통된 정서였다.
‘나성에 가면’은 경쾌한 멜로디 속에 이민 시대의 설렘과 그리움, 그리고 거리의 물리적·정서적 간극을 담아낸 기록물이다. 오늘날 해외 연락이 실시간으로 가능한 시대에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면, 반세기 전의 느리지만 애틋했던 소통 방식과 함께, 당시 한국 사회가 품었던 미국에 대한 꿈과 현실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