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본에 무역·안보를 아우르는 전방위 압박에 나선 가운데, 대미 무역흑자 구조가 유사한 한국에도 동일한 요구가 가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음 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방미를 앞두고, 전문가들은 미·일 협상의 흐름이 한국에 사실상 ‘사전 통보’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협상 전략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17일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일본 경제 담당 고위 인사와의 면담에서 ▲주일미군 방위비 부담 증액 ▲미국산 자동차 판매 확대 ▲대일 무역적자 해소 등 세 가지 의제를 동시에 꺼내들며 ‘패키지 협상’ 방식을 시사했다. 이 같은 전략은 단일 품목이나 분야에 그치지 않고 관세, 무역, 안보를 통합한 종합 압박으로, 향후 한미 간 통상 협상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미·일 협상의 ‘속도전 여부’에 주목했다. 일본은 당장 협상 타결을 서두르지 않고 있으며, 트럼프가 경기 둔화 국면에서 여론 악화로 입장을 바꿀 여지를 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통상 전문가는 “이달 말 예정된 미국 1분기 GDP 발표가 부정적일 경우, 트럼프 측이 협상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은 이 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는 벌써부터 미국에 무엇을 양보할 수 있는지를 검토 중인데, 오히려 미국 측에 더 많은 요구를 이끌어낼 명분만 주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본이 전략적 인내를 통해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려는 것과 달리, 한국은 ‘선양보-후협상’ 구조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에서 품목관세 인하나 면제를 논의할 가능성도 주목된다. 특히 자동차와 관련된 품목관세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 민감한 사안으로, 미국이 이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낼 경우 한국의 대응 논리 수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 무역 전문가에 따르면 “자동차 부문은 단순한 상호관세보다 개별 품목에 대한 관세가 결정적 변수”라며 “미국이 일본과 이 문제를 테이블에 올린다면, 한국도 같은 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비관세 장벽 또한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미국은 일본의 각종 인증제도, 농산물 유통 시스템, 산업 보조금 정책 등을 비판해 왔으며, 이번 협상에서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이 의제로 떠오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구체적 비관세 장벽 해소 방안을 확인하면, 우리 산업계에 대한 향후 압박 내용을 사전에 가늠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역시 통상 협상과 결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는 과거에도 무역 문제를 안보와 연계해 ‘원스톱 쇼핑’ 방식을 선호해 왔으며, 이번에도 일본에 유사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국 역시 방위비 문제에서 미국의 요구 수위가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현재 한국 정부는 대미 협상팀을 중심으로 미·일 협상의 흐름을 실시간 분석 중이며, 방미 직전까지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조율할 계획이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 전략 품목의 관세 유예 여부, 대미 투자 확대 사례의 협상 지렛대 활용, 미국 내 정치 일정과 경제 지표를 고려한 협상 타이밍 조절 등이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미 간 협상이 단기 성과에 급급할 경우, 미국에 전략적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며 “일본처럼 시간을 벌면서 국익을 지키는 협상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