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마약청정국’으로 불리던 대한민국이 아시아 마약 밀매조직의 유통 거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높은 마약 가격과 간편한 비대면 유통 환경을 노린 국내외 마약상들의 활발한 침투가 이뤄지고 있으며, 정부는 범정부 단속에 나섰다.
대검찰청이 1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적발된 전체 마약사범 2만3022명 중 공급사범은 7738명으로, 전체의 33.6%에 달했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었던 전년도 비율(33.1%)보다 더 높은 수치로, 2004년(16.0%)과 비교하면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마약 공급사범 비율 증가의 배경으로는 한국이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마약 가격이 수십 배 이상 비싼 점이 지목된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필로폰 1g의 소매가는 300달러(약 43만원)로, 미얀마(10.39달러), 태국(19.13달러)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이러한 가격 격차는 한국을 마약상들에게 매력적인 프리미엄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동남아와 중국 등과의 교류가 재개되면서 이들 지역 마약 공급망은 한국을 주요 판매처로 삼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 마약사범 수는 2018년 948명에서 2023년 3232명으로 5년 만에 세 배 이상 증가했다. 검찰 관계자는 “팬데믹 기간 중 유통되지 못하고 쌓였던 대량의 마약이 가격이 높은 한국 시장으로 과잉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내 유통 구조의 변화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SNS와 가상자산을 매개로 한 비대면 마약 거래가 급증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공급사범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23년 기준 전체 마약사범 중 30대 이하 비율은 63.4%에 달했으며, 공급사범 역시 3명 중 2명은 30대 이하였다.
특히 텔레그램 등 익명 메신저에서 이뤄지는 ‘마약방’은 가상자산 결제를 통해 추적을 피하고 있으며, 유통의 간편함을 앞세워 청소년까지 공급책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이러한 마약류 범죄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6일부터 60일간 범정부 특별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관계 당국은 SNS 기반 거래망 추적, 가상자산 추적 기술 고도화, 외국인 공급책에 대한 출입국 관리 강화 등을 중심으로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단속뿐 아니라 교육과 재활, 국제공조를 포함한 다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범죄심리 전문가는 “한국은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다. 수요 차단과 함께 마약의 위험성을 사회 전반에 인식시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