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재야’로 불리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유족에 따르면 장 원장은 담낭암 투병 끝에 22일 오전 1시 35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 7월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담낭암 말기 진단 사실을 알리며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되어 치료가 어렵다”며 담담한 심정을 전한 바 있다. “살 만큼 살았고,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민주화·노동운동의 대부로서의 삶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장 원장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와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서울대 법학과 재학 중이던 그는 1966년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1995년에야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등 여러 사건에 연루되어 9년간의 수감 생활과 12년간의 수배 생활을 겪었다. 수차례 투옥과 석방을 거듭하면서도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상금을 거부했던 고인은 “국민 된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전태일 열사와의 인연
전태일 열사 사후, 장 원장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함께 시신을 인수하고 장례를 치렀다. 이후 조영래 변호사에게 전태일에 관한 자료를 전달하여 ‘전태일 평전’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2009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재야 운동가에서 제도권 진입까지
1980년대부터 재야운동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은 장 원장은 1984년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하는 민주통일국민회의를 창립하는 데 기여했으며,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 창립에도 앞장섰다. 이후 여러 진보정당을 창당하며 정치 활동을 이어갔으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7차례 도전 끝에 모두 낙선했다.
‘영원한 재야’로 남은 이유
장 원장은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하면서도 제도권 진입에 실패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설립하여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주력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 활동하며 국회의원의 면책·불체포특권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생애의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하며,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유족과 장례
고인은 부인 조무하 씨와 딸 하원, 보원 씨를 남겼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조문은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6일, 장지는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으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