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정동의 덕수궁 돌담길은 낭만적인 산책로로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연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돌담길을 걷는 연인들이 이별하게 된다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도시 괴담이 아니라, 여러 역사적 배경과 상징이 맞물려 생겨난 도시전설로 평가된다.
가장 유력한 설은 ‘서울가정법원 설’이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자리에는 1990년대 초까지 서울가정법원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이혼 소송을 비롯한 가족 관련 사건이 다뤄졌기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이 법정에 가는 길로 돌담길을 자주 걸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길을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입소문처럼 번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영국대사관 설’이 있다. 과거 돌담길은 영국대사관 부지로 인해 중간이 막혀 있었다. 이 때문에 연인들이 한 번에 길을 완주하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했는데, 이를 ‘인연의 단절’에 빗대어 이별의 상징으로 여겼다는 설명이다.
그 밖에도 ‘궁녀들의 원한 설’도 전해진다. 덕수궁에 머물던 궁녀들이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면서 그 한이 서려 연인들을 질투해 헤어지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설화적 요소가 강하지만, 덕수궁이라는 공간의 역사성과 신비로움을 더하는 전승담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덕수궁 돌담길은 오히려 ‘이별의 길’이 아닌 ‘사랑의 길’로 재해석되고 있다. 재개방 이후 조성된 산책로에는 카페와 미술관, 정동극장 등이 들어서면서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과거의 속설이 남긴 이야기는 서울의 한 단면을 비추는 흥미로운 도시문화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