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가자 재편 구상’이 공개되면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하마스를 대체해 누가 가자를 관리할 것인가’다. 구상 9항에는 ‘테크노크라트 및 비정치적 팔레스타인인으로 구성된 위원회’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문장을 본 순간, 많은 중동 전문가는 한 사람을 떠올렸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개혁가로 불린 살람 파예드(Salam Fayyad) 전 총리다.
파예드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총리를 지내며 팔레스타인 정치에 ‘테크노크라시’ 개념을 심은 인물이다. 기존의 ‘반(反)이스라엘 정통성’에 기대던 정치 행태에서 벗어나, 그는 내부 개혁과 제도 정비를 국가 건설의 핵심으로 보았다. 이를 ‘선언 없는 국가건설론’이라 불렀다.
그는 재무장관 시절부터 월간 재정보고 시스템을 도입해 모든 예산의 흐름을 공개했다. 팔레스타인 정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비공식 원조금과 각종 상납 구조가 드러나자 기존 권력층의 반발이 거셌다.
총리가 된 뒤에는 고위 정치인을 배제하고 전문관료 중심의 내각을 구성했다. 부처를 축소하고 예산을 도로, 상하수도, 병원, 학교 등 ‘국가의 뼈대’를 세우는 인프라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11년 유엔 보고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가로 기능할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팔레스타인의 출생증명서’라 불렀다.
그의 개혁정책은 ‘파예디즘(Fayyedism)’이라 불릴 만큼 상징적이었다. 그러나 내부 저항은 끝내 그를 무너뜨렸다. 파타와 하마스 양측 모두에게 비우호적이었던 그는 결국 정치 일선에서 밀려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재 그는 하버드대 벨퍼센터와 중동연구소, 프린스턴대에서 연구와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파예드는 올해 73세다. 나이가 많지만,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보다 세 살 어리다. 과거 이스라엘 내에서도 ‘대화가 가능한 팔레스타인 지도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는 정서가 팽배해, 오히려 파예드 같은 실용적 개혁가를 더 경계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구상 속 ‘비정치적 테크노크라트’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인물은 여전히 파예드뿐이다. 부패한 정치 대신 행정과 투명성, 그리고 제도적 기반을 중시하는 그는, 혼란스러운 가자를 다시 일으킬 ‘한 사람’으로 손꼽힐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