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도쿄 하라주쿠에 위치한 일본 최대 뷰티 편집숍 ‘앳코스메 도쿄’에는 일본 브랜드 ‘윤스’ 팝업스토어를 찾는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다. 매장 전면에는 방탄소년단(BTS) 뷔의 대형 사진이 설치돼 있었고, 이를 본 일부 방문객들은 윤스를 한국 브랜드로 오해했다. 윤스는 지난해 10월 29일 뷔를 글로벌 앰버서더로 발탁한 일본 화장품 브랜드다. 현장에서 만난 22세 시바타 씨는 “뷔가 모델이라 당연히 한국 브랜드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일본 주요 유통 현장에서는 K뷰티의 영향력이 뚜렷하다. 마츠모토키요시 시부야점에서는 화장품 매대 30개 중 약 10개가 한국 브랜드로 채워져 있고, 핸즈 시부야점은 절반 이상이 K뷰티다. 관광객이 몰리는 돈키호테 시부야점의 화장품 매대는 80% 이상이 한국 제품이다. 포장에는 한국어를 활용하고, PDRN·쌀눈 등 한국 화장품에서 유행한 성분을 강조한 제품도 다수다. 로손·패밀리마트·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에서도 롬앤, 토리든 같은 한국 브랜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 화장품은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이후 일본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넷플릭스·유튜브·틱톡 등을 통해 K팝과 K드라마 소비가 늘면서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고, 이는 화장품 소비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 온라인몰에는 “모든 한국 화장품 환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큐텐재팬 등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판매가 급증했고, 이후 오프라인 유통망까지 확대됐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화장품의 일본 수출액은 10억8747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 화장품은 2022년부터 일본 수입 화장품 시장에서 프랑스를 제치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앳코스메 도쿄에서 만난 32세 시오리 씨는 “SNS로 K뷰티를 처음 접했다”며 “가격이 저렴해 여러 제품을 시도해볼 수 있고, 디자인도 귀엽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온 관광객 일리 멘도사 씨는 달바 미스트 세럼 여러 개를 구매하며 “TV 프로그램을 보고 유명해져 필리핀에서도 인기”라며 “콜라겐 등 성분과 마스크팩 품질이 좋다”고 말했다.
K뷰티 인기는 K패션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도쿄 시부야 파르코백화점 4층에 정규 매장을 열고 2주 단위로 한국 패션 브랜드 팝업을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오르와 히에타가 소개됐고, 40대 여성 고객까지 유입됐다. 41세 메구미 씨는 “한국 브랜드는 디자인과 품질이 좋고, 일본 브랜드보다 10~15% 저렴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인플루언서와 아이돌의 착용이 소비로 이어지는 ‘디토 소비’ 문화가 강하다. 20세 모모 씨는 “인플루언서 착용 사진을 보고 옷을 고른다”며 “한국 브랜드는 트렌디하다”고 말했다. 21세 아오바 씨는 “온라인 쇼핑을 주로 하고, 무신사에서 한국 브랜드를 산다”고 했다.
글로벌 조사기관에 따르면 일본 패션 시장 규모는 약 72조 원으로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무신사, W컨셉 등 한국 패션 플랫폼들도 일본에서 팝업스토어를 열며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K푸드 역시 일본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 한인타운에는 동대문엽기떡볶이, 설빙, 신촌설렁탕, 홍콩반점, 네네치킨 등 한국 브랜드가 밀집해 있다. SNS에서 화제가 된 디저트 브랜드 ‘요아정’ 앞에는 10~20대 여성 중심의 대기 줄이 이어진다. 16세 리노 씨는 “틱톡에서 본 메뉴를 그대로 주문했다”며 “드라마를 보고 한식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K푸드는 아직 일본 가정식 시장까지는 깊게 파고들지 못했다. 대형 마트에서는 일부 인기 제품을 제외하면 한국 가공식품 비중이 낮다. CJ푸드재팬 관계자는 “일식은 단맛·담백한 맛이 중심이지만 한식은 매운맛과 짠맛 등 스펙트럼이 넓다”며 “경험이 늘면 수요도 충분히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