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겐은 1959년 6월 14일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사진사를 운영하며 안정적인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그는 학업에 매진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나갔다. 와세다실업학교 중등부를 졸업한 후, 도쿄교육대학부속 고마바고등학교(현 쓰쿠바대학 부속 고마바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이후 도쿄대학 경제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시절부터 그는 뛰어난 학업 성적과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후 그는 1983년에 통상산업성(現 경제산업성)에 입성하면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사이토는 1991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국제적 시야를 넓히게 되었고,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대신관방 비서과 인사기획관, 후카야 다카시 통상산업대신의 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관료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이후 내각관방 행정개혁추진사무국 기획관을 맡았고, 2004년에는 사이타마현 부지사로 임명되며 지방 정부에서도 경력을 쌓게 되었다.
사이토는 2006년 치바 7구 보궐선거에 자유민주당 공모를 통해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후보와 955표 차이로 아깝게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의지를 꺾지 않고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이번에도 치바 7구에서는 낙선했지만 석패율제로 비례대표로 당선되며 정치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다. 중앙 정치에 진입한 후, 사이토는 자민당 환경부회장에 취임했고, 2010년에는 자민당 정권력위원회 환경·온난화대책담당으로 활동했다.
2012년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치바 7구에 출마해 우치야마 아키라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며 지역구 의원으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이 시기 그는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환경대신 정무관으로 활동하며 환경 정책과 온난화 대책 등에 주력했다. 2013년에는 자민당 농림부회장으로 임명되었는데, 통상산업성 출신 정치인이 농림부 회장을 맡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이는 당시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었던 다카이치 사나에의 추천에 따른 것이었다.
2015년에는 제3차 아베 신조 내각의 개조에 따라 농림수산부대신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제4차 내각에서도 연임하였다. 그의 농림수산대신 재임 시기에는 일본의 농업 및 어업 정책을 강화하고, 특히 일본산 농산물의 해외 수출을 증진시키는 데 주력했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는 일본 농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2022년 11월, 당시 법무대신이던 하나시 야스히로가 실언 논란으로 경질되자 사이토 겐은 그 후임으로 제107대 법무대신에 취임하였다. 법무대신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일본의 법률 제도를 현대화하는 데 힘썼으며, 특히 법무부의 인권 문제와 형사 사법 개혁에 주력했다. 하지만 2023년,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대신이 정치 자금 스캔들로 물러나자, 사이토 겐은 그 후임으로 경제산업대신에 임명되었다.
경제산업대신으로서 사이토 겐은 일본의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특히 탈탄소화와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일본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경제 전환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이토 겐은 정치 경력 동안 신중하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왔으며, 여러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자민당 내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