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가쓰노부는 1955년 11월 22일, 도쿄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대장성(현 재무성)에서 관료로 근무했다. 쿠라요시시 세무서장, 내각관방 부장관 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정치 경험을 쌓았고, 1995년에 대장성을 퇴직한 후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해 장인인 가토 무쓰키의 비서로 취임하면서 정치 기반을 다졌다.
2003년, 가토 가쓰노부는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첫 당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1998년 참의원 선거와 2000년 중의원 선거에서 두 번이나 낙선했으나, 2003년에 비례대표로 당선되며 정치 무대에 발을 디뎠다. 이후 2005년에도 비례대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2009년에 가서야 오카야마현 제5구에서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첫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며 여러 차례 재선되었다.
2015년, 가토는 내각부 특명담당대신(남녀 공동참획·저출산대책)을 맡으며 정부 내에서의 입지를 다졌다. 2017년에는 납치문제 담당 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그는 후생노동대신으로 취임하며 2기 후생노동대신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후생노동대신 재임 기간 동안 코로나19 대응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20년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발생한 대규모 감염 사태 당시, 일본 내 확진자 수에서 해당 감염자를 제외하겠다고 발표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코로나19 확산 초기 단계에서 감염자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그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20년,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출범하면서 가토는 내각관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해 9월, 그는 내각회의에서 미일안전보장조약과 관련해 일본의 시정권이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독도와 쿠릴 열도를 언급하며 또 한 번 논란을 일으켰다. 2021년 10월, 스가 내각의 사퇴와 함께 가토도 관방장관직에서 물러났다.
2022년, 가토 가쓰노부는 다시 후생노동대신으로 재임하며 3기의 후생노동대신으로 복귀했다. 그는 후생노동대신으로서 아베노마스크 배포 문제와 관련된 부패 의혹에 대해 해명했고, ‘경증환자의 숙박시설 요양’ 방침을 내놓는 등 코로나19 대응책을 내세웠다.
2023년 9월, 그는 제2차 기시다 개조내각의 개각에 따라 후생노동대신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