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 변동성이 커지자 정부가 석유 가격 상한제 도입을 추진하며 시장 개입에 나섰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약 30년 만에 정부가 석유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조치다.
10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를 근거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시행을 위한 고시 제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제도는 이르면 이번주 중 시행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정부가 검토 중인 방식은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도매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이다. 공급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제한해 국내 유가 상승 속도를 억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조치는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국제 유가가 급등한 데 따른 대응으로 풀이된다. 최근 브렌트유 가격은 한때 배럴당 100달러 수준까지 상승한 뒤 현재 90달러 안팎에서 등락하고 있다.
국내 주유소 가격도 빠르게 상승하는 흐름이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00원을 넘어섰고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1950원에 근접한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국내 석유 가격이 국제 유가 상승 때는 빠르게 반영되고 하락 때는 늦게 떨어지는 가격 비대칭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정유사의 공급가격을 관리해 시장 전반의 가격 상승 기대를 완화하고 급격한 인상 속도를 늦추겠다는 판단이다.
가격 상한은 국제 유가와 환율, 정제 비용 등을 반영해 산정하고 약 2주 단위로 조정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국제 유가 변동을 반영하되 급격한 상승을 완충하는 구조다.
다만 가격 통제가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상한 가격이 실제 시장 가격보다 낮게 설정될 경우 소비는 늘고 공급은 줄어드는 초과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주유소 대기나 판매 지연, 암시장 거래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심리 안정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장기 시행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제 유가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생산비와 물류비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상시 제도로 운영하기보다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유류세 조정이나 비축유 활용 등 추가적인 물가 안정 대책도 함께 검토 중이다.
한편 국내 석유 비축량은 약 1억9000만배럴로 국제에너지기구 기준 약 200일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규모로 파악된다. 향후 국제 유가 흐름은 고유가 지속 여부와 호르무즈 해협 정세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