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소닉 창업자 松下幸之助의 경영철학서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機微(きび)’다. 일상 일본어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지만, 문맥 속에서 이 단어는 유독 중요한 자리에 놓인다. 한 번 눈에 들어오면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다.
일본어 사전에서의 ‘機微’는 표면만 보고는 알 수 없는 미묘한 정황과 사정을 뜻한다. 감정의 결, 관계의 온도, 상황의 미세한 변화처럼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영역을 가리킨다. ‘인정의 기미에 닿다’라는 표현에서 보듯, 판단 이전에 감지되는 미묘함이 핵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한자를 쓰는 한국어 ‘기미(幾微/機微)’와의 차이다. 한국어에서 기미는 어떤 일이 벌어질 조짐이나 눈치, 분위기를 읽는 감각에 가깝다.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포착하는 신호에 방점이 찍힌다. 일본어 ‘機微’가 이미 벌어지고 있는 관계와 상황의 섬세한 결을 읽는 개념이라면, 한국어 ‘기미’는 앞으로 벌어질 변화를 예감하는 감각에 더 가깝다.
이 차이는 단어가 불러오는 연상에서도 드러난다. ‘機微’는 섬세함, 디테일, 그리고 오묘함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오묘하다는 말은 심오하면서도 단순한 분석으로는 닿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機微’는 흔히 뉘앙스라는 개념과 겹쳐 읽힌다. 뉘앙스는 음색, 어감, 색의 명도처럼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차이에서 오는 인상이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이라도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松下幸之助가 말한 ‘機微’는 경영 기술이나 전략 이전의 감각에 가깝다. 사람의 마음, 조직의 공기, 시대의 흐름을 숫자보다 먼저 읽어내는 능력이다. 드러난 정보보다 드러나지 않은 신호를 포착하는 힘, 그것이 이 단어가 반복해서 호출되는 이유다. 결국 ‘機微’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태도에 대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