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 양국이 14일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를 통해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를 위한 절차를 시작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원자력협정 개정 논의가 공식 궤도에 올랐다. 한국 정부가 수년간 숙원으로 삼아온 핵연료주기 자율권 확대가 외교 문서에 처음으로 명문화된 것이다.
공개된 팩트시트에는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민감하게 다뤄온 핵연료주기 권한에 대해 공식 평가와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2035년까지 유효하며, 한국은 미국의 사전 동의가 있을 때에만 20% 미만 저농축 우라늄 생산이 가능하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금지돼 있다. 한국은 26기의 상업용 원전을 운영하면서도 모든 연료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자율적 농축과 재처리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정부는 이번 합의가 단순한 협조 수준을 넘어 제도적 변화를 여는 신호탄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이 요구해온 권한은 일본이 이미 ‘포괄적 승인’으로 행사하고 있는 범위와 유사한 수준이다. 일본은 사전에 정해진 시설과 범위 내에서는 미국의 개별 승인 없이 농축과 재처리를 자체 수행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제도 개정까지는 넘어야 할 단계가 적지 않다. 미국 내에서는 해당 권한이 군사적 전용 가능성과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팩트시트에 ‘민간’이라는 표현이 강조된 것도 이러한 경계심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재처리 권한은 플루토늄 분리와 직결돼 미국 의회와 정책 당국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분야다.
협정 개정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협정을 새로 체결하는 방안뿐 아니라 기존 협정의 해석 조정이나 권한 조정 방식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후속 실무 협의에서는 한국의 농축 상한, 재처리 범위, 시설 검증 체계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일본이 특정 조건에서 20% 이상 고농축까지 허용받는 선례가 있어 한-미 간 상한선 조율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무엇보다 미국 의회의 최종 승인이 필수인 만큼 일정이 단기간에 마무리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미국 내 비확산 기조가 강한 상황에서 한국이 군사적 목적과의 완전한 분리를 입증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를 한국 원자력산업의 전략적 자립을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하면서도, 향후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국제적 신뢰 확보가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이 요구한 권한 확대가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후속 협상과 미 의회의 판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