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대 교황 레오 14세가 지난 8일(현지시간) 성 베드로 대성전의 발코니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레오 14세는 자신이 어떤 교황으로 기억될지 암시하는 세 가지 상징적 시그널을 보여줬다.
가장 먼저 주목할 시그널은 그의 즉위명이다. 교황들은 전통적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나 신념을 반영하는 이름을 선택한다. 레오 14세는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사회정의 구현에 앞장섰던 레오 13세(1878~1903년 재위)의 이름을 따랐다. 레오 13세는 노동자의 공정한 임금과 노동조합 결성권 등 당시로선 혁신적인 주장을 펼친 인물이다. 예수회 토마스 리스 목사는 “레오 14세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더욱 강조할 것이라는 의지를 즉위명 선택으로 보여줬다”고 해석했다.
둘째는 교황이 첫 연설에서 사용한 언어와 메시지다. 미국 출신이면서도 그는 영어 대신 바티칸 공식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첫 메시지를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국적의 첫 교황이지만 특정 국가나 언어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평가했다. 첫 연설에서 그가 강조한 메시지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이었다. 특히 ‘무장해제된 평화’라는 표현으로 우크라이나, 중동 등 국제적 갈등 지역의 긴장 해소를 강력히 촉구했다. 그는 또한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고 덧붙였다.
셋째는 레오 14세가 선택한 옷차림이다. 그는 흰색 수단 위에 전통적인 붉은 장식이 더해진 교황복을 입고 나타났다. 이는 즉위 직후부터 검소함을 강조하며 모든 장식을 철저히 배제했던 프란치스코 전 교황과 대비되는 행보이다. 로이터는 “붉은 제의를 선택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통을 일부 따르되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교황’의 시대를 열겠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한편, 레오 14세는 본명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으로, 미국 출신 최초의 교황이다. 그러나 페루 빈민가에서 20여 년간 사목활동을 하며 페루 시민권도 취득해 국제적 배경을 갖추고 있다. 그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과 온건한 개혁을 강조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