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공안 조작 사건으로 기록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사형수 8명의 생을 조명한 책 다시, 봄은 왔으나가 출간됐다. 4·9통일평화재단 이창훈 사료실장이 집필한 이 책은 1975년 4월 9일 8명의 사형이 집행된 사건을 중심으로, 이들이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과정과 생애를 기록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에 대한 수사 도중 중앙정보부가 인혁당 재건위 조직을 배후로 지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긴급조치 4호에 따라 1,024명이 연행돼 조사받았고, 253명이 군법회의에 기소됐다. 같은 해 6월 시작된 재판은 10개월 만인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내려졌고, 그 다음 날 새벽 서도원, 김용원, 이수병, 우홍선, 송상진, 여정남, 하재완, 도예종 등 8명이 30분 간격으로 사형당했다.
이창훈 실장은 2011년부터 6년간 유가족과 사건 관계자 45명을 인터뷰하고, 신문 기사, 재판 기록 등을 바탕으로 자료를 축적했다. 그러나 당시 중정에 의해 은폐·소각된 기록 탓에 8명의 개별 전기 형식은 완성하지 못했고, 대신 이들의 삶을 엮은 약전 형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해당 사건은 창당조차 되지 않았던 인혁당의 재건을 명분 삼아 정권이 기획한 조작 사건으로 평가된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부터 검찰 기소 거부를 무시하고 당직검사를 통해 기소를 강행한 전례가 있으며,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연결해 다시금 활용됐다. 인혁당 재건위 사형수들은 2007년 재심을 통해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책에는 이들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 유신 체제하에서의 활동과 희생까지를 다룬다. 31세로 생을 마친 여정남은 고교 시절 과학자를 꿈꿨던 인물로, 저자는 “쿠데타가 없었다면 은퇴한 노교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서술한다. 책에는 이들과 직간접으로 얽힌 1950~70년대 진보운동가 500여 명도 등장하며, 당시 투쟁 노선 선택이 생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1972년 유신 체제를 ‘총칼로 정권을 찬탈한 세력의 사리사욕’으로 규정하고, 12·3 비상계엄 사태를 “불의의 역사가 44년 만에 재현된 것”이라 평가한다. 특히 국가가 여전히 사형수들의 명예 회복에 미온적이라며, 2005년 제정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음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