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계엄 시도에 대해 원로 보수 논객들이 공개적으로 비판에 나섰다. 조갑제와 정규재, 서로 다른 스펙트럼에 속한 이념 보수와 시장 보수의 대표적 인물이 한목소리로 윤석열 정부의 반헌법적 행태를 성토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모두 체제 수호와 자유를 핵심 가치로 여겨온 인물들이다.
조갑제는 1990년대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상징적 존재로, 반공주의에 기반한 정통 보수를 대표해왔다. 그는 김대중의 사상을 집중 검증하고, 북핵 위기 속에서 반공 노선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극우 음모론에 대해선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팩트 자체가 틀렸다”며 강하게 반박해왔다. 식민사관에도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 조갑제조차 윤석열의 12·3 계엄 시도에 대해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공 보수의 이름으로도, 헌법적 질서의 이름으로도 이 계엄 기도는 용납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규재는 시장주의 보수의 대표 주자로, 한국경제신문에서 경제부장과 논설실장 등을 지내며 자유시장경제의 논리로 정치를 비판해왔다. 복지정책을 “국가가 살포하는 뇌물”이라 비판하고, 경제민주화를 “좌편향 국가주의”로 규정한 그는, 일관된 자유주의자다.
그 역시 윤석열 계엄에 대해 “시장자유와 정면 충돌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전광훈 목사 등 극우 종교세력의 윤석열 지지 운동에 대해 “종말론적”이라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고, 계엄 시도를 헌법 파괴 행위로 본 것이다.
조갑제와 정규재는 각기 다른 철학을 가졌지만, 이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가치는 체제 수호와 자유 보장이다. 보수 본연의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전광훈류의 극단적 복음주의와 결합해, 보수를 반지성주의의 광신으로 오염시키고 있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전광훈은 개척시대 미국 복음주의 운동가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군중을 선동한다. 학식을 경시하고 감정을 자극하며, 반공과 애국을 명분 삼아 현실 정치에 종교적 열광을 이식한다. 그는 전근대적 부흥회를 21세기 한국 정치에 접목시켜, 반공 보수와 시장 보수마저 ‘배신자’로 몰고 있다.
윤석열은 이 괴물 위에 올라탄 정치적 돈키호테에 불과하며, 국민의힘은 그의 시종 산초처럼 이를 방조하고 있다. 한때 조갑제와 정규재 같은 보수 지식인을 존중하던 국민의힘은 이제 이성 없는 극우 세력에 휘둘리며 보수의 가치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차라리 과거 조갑제와 정규재의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논쟁하던 시절이 더 나았다. 그들은 최소한 이성을 기반으로 한 논쟁이 가능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최근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입장 표명이 아니다.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보수의 마지막 정신마저 짓밟고 있다는 경고이자, 침묵했던 보수 양심의 각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