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표현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일본신문노련 젠더 표현 가이드북 편집팀이 집필한 <실패 없는 젠더 표현 가이드북: 혼잣말도 바꾼다>(마티, 2025)가 출간되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언어 속에 내재된 젠더 불평등 요소를 점검하고, 더욱 공정한 표현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실천적인 가이드북이다.
책은 젠더 표현이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는 ‘리터러시’의 영역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관습적 차별이 반복되고 있다. ‘여성 특유의’, ‘여성다운 섬세함’, ‘내조의 힘’, ‘게이는 남자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도 잘 이해한다’ 등의 표현은 의도와 관계없이 차별적 상황을 공고히 한다. 이는 ‘먼지 차별(Microaggression)’로 불리며, 일상 속에서 무심코 사용되는 미세하지만 만연한 편견과 억압의 형태다.
언론 현장에서 시작된 변화의 움직임
이 책의 저자들은 일본신문노동조합연합(신문노련) 소속 여성 기자들로, 언론계에서 젠더 표현 개선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책을 집필했다. 일본 신문, 통신사뿐만 아니라 인쇄 및 판매 관련 회사의 85개 조합이 가입한 신문노련은 젠더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 책은 그 성과의 일환으로, 일본 언론인들이 체계적으로 자료를 구축해 출간한 첫 번째 젠더 관련 가이드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언론계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사회적 의제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디어업계는 젠더 불평등을 조장하거나, 관습적으로 차별적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업계의 주요 의사 결정권자가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젠더 표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논의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 책은 언론 종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뉴스 생산자들에게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미디어를 넘어, 모두를 위한 가이드북
이 책이 목표로 하는 독자는 언론 종사자뿐만이 아니다. 최근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누구나 뉴스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더 나아가 교육 현장, 관공서, 기업 광고 등도 넓은 의미에서 ‘뉴스’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때, 젠더 표현 점검과 개선은 사회 전체가 함께해야 할 공동 과제다. 따라서 이 책은 언론계의 사례를 바탕으로 일반 대중이 젠더 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깨달음의 책’이기도 하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됐다. 1장 ‘젠더 관점에서 읽기’와 2장 ‘웹에서 일어나는 일’에서는 신문 기사와 온라인 뉴스 속 성차별적 표현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3장 ‘성폭력 보도 현장에서’는 미디어가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흔히 저지르는 젠더 불평등의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4장 ‘실패에서 배우는 사람과 조직 만들기’에서는 언론계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과 개인이 젠더 평등을 실천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실천적 변화의 시작, 언어부터 바꿔야
책의 또 다른 특징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 사례와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뀔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표현을 제안하는 것은 단순히 ‘이것이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짚어보며,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가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2023년 3월)을 발표하며 젠더 표현 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본에서도 젠더 평등을 향한 법적·제도적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도쿄도 전역에서 성소수자 파트너십 제도가 시행되었으며, 일본 형법 개정으로 ‘비동의강간죄’ 개념이 도입되는 등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실패 없는 젠더 표현 가이드북: 혼잣말도 바꾼다>는 젠더 평등을 위한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모두가 함께 읽고 실천할 수 있는 가이드북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특히 어린이와 10대 독자들과 함께 읽으며 미래 세대가 보다 평등한 언어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