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제도는 크게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로 구분된다. 유책주의는 배우자 중 한쪽이 혼인에 따른 의무를 위반했을 때, 그 책임이 있는 쪽에게 이혼 청구를 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부정행위나 가정 내 폭력, 악의적 유기 등의 사유로 피해를 본 배우자만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제도는 이혼 책임이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가 상대방에게 이혼을 청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파탄주의는 혼인 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에 이른 경우, 당사자 간의 책임 여부와 상관없이 이혼을 허용하는 제도다. 즉, 혼인의 본질적인 목적이 달성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누구든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법 체계와 이혼 제도
우리나라 민법 제840조는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6가지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제1호부터 제5호까지는 부정행위, 악의의 유기, 부당한 대우, 생사불명 등의 구체적인 이혼 사유를 다루고 있다. 제6호는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로 포괄적인 사유를 다루며, 이를 근거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3므568)에 따르면,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유책주의 원칙과 협의 이혼의 가능성: 우리 민법은 유책주의를 기본으로 하지만, 협의 이혼은 허용하고 있다. 즉, 유책배우자가 상대방을 설득하여 협의 이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파탄주의 도입 시 문제점: 파탄주의를 채택할 경우, 이혼 후 유책배우자에게 부양책임이 제대로 부과되지 않거나, 중혼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한, 아직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로 인해 상대방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과 생계 유지의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는 현실적 문제가 존재한다.
예외적 상황에서의 유책배우자 이혼 청구 가능성
대법원은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 상대방도 이혼을 원할 경우: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지속할 의사가 없는 경우, 즉 일방의 의사에 따른 강제적인 이혼이 아니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허용될 수 있다.
- 상대방 및 자녀 보호가 충분히 이루어진 경우: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이루어지더라도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즉 이혼 후에도 상대방이 생계나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도록 보호책이 마련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 시간 경과로 인한 책임의 약화: 세월이 흐름에 따라 혼인 파탄 당시 유책배우자의 책임성이 약해지고, 상대방이 받은 정신적 고통이 완화된 경우, 이혼 청구를 배척할 필요가 없는 상태라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
대법원 판결과 반대 의견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6명의 대법관은, 혼인 관계가 객관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혼인 관계가 사실상 종결된 상태에서 형식적으로만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다만, 반대 의견에서도 유책배우자의 귀책 사유를 고려해 위자료 산정 시 충분히 반영하고, 재산 분할 시에도 상대방 배우자의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법원은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상황에 따라 예외적으로 파탄주의를 일부 받아들여 이혼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파탄주의가 전면적으로 도입될 경우,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에 대한 보호가 부족해질 수 있는 문제가 남아 있어,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법적 논의는 향후 우리나라 이혼 제도의 발전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