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오층석탑환수위원회(공동대표 보문 스님)가 지난 8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오쿠라문화재단과 이천오층석탑의 환수를 위해 협상을 진행했다. 이번 협상에는 보문 스님과 함께 이상구 환수위 상임위원장, 박명서 이천시의회 의장, 정철화 이천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회장, 이우정 환수위 사무처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뜻을 모았다.
보문 스님은 협상 후 소감을 통해 “이번 협상은 오쿠라집고관의 새로운 사무국장인 후쿠다 히데아키(福田秀明)와 처음으로 대면한 자리였으며, 담당자 교체로 인해 원활한 의견 교류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천오층석탑의 환수는 종교를 넘어 한일 양국 간 문화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의의를 강조했다. 그는 오쿠라문화재단 측이 해당 문화재의 환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상구 상임위원장은 이번 협상에서 일본 측이 반출된 문화재의 환수 중요성에 대해 인식을 함께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우리의 환수 활동이 정당한 명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일본 측도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이천오층석탑 환수가 향후 양국 간 문화유산 환수 협상에서 중요한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이천오층석탑 환수 지지입장문’을 발표하며 국외 소재 문화재의 환수가 시대적 소명임을 강조했다. 진우 스님은 “이천오층석탑은 불법적으로 반출된 경위가 명확히 기록된 중요한 문화재로, 빠른 시일 내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당위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대한민국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은 환수위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환수위원회는 오쿠라문화재단과의 협상을 마친 후 도쿄 아키루노시에 위치한 다이교우지(大行寺)를 방문하여 독립운동가 원심창의사의 묘소와 6.25동란 당시 참전했던 재일학도의용군 충혼비를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심창의사는 1906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서 출생해, 1919년 기미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다. 1933년 상하이에서 육삼정의거를 계획했으나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냈다. 해방 후 일본에 재일조선거류민단을 창설하였으며, 6.25동란이 발발하자 재일학도의용군을 조직해 참전하는 등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이어갔다. 이후 <통일일보>을 창간하여 통일 운동에 매진하다가 1971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그에게는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다이교우지에는 이러한 원심창의사의 묘소와 함께, 6.25동란 당시 재일학도의용군을 기리는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보문 스님과 환수위 일행은 원심창의사의 독립정신과 재일학도의용군의 희생을 기리며 참배했다. 이번 참배는 단순한 문화재 환수를 넘어, 역사적 인물에 대한 존경과 한일 간 평화적 관계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